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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청년단·태자당 손잡고 美의 위안화 절상 요구 거부

중국 대형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회의)가 이달 13일 막을 내렸다. 올해 화두는 경제정책 방향이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제시한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고도성장과 구조조정이다. 성장률을 해마다 8%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베이징 컨센서스 vs 워싱턴 컨센서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모순점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은 물가 안정을 강조하면서도 기준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은 연기했다. 경제성장 엔진을 수출에서 내수로 바꾸겠다고 하면서도 위안화 가치의 절상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성장 엔진을 수출에서 내수로 바꿀 때 통화 가치를 절상하는 방식이 즐겨 쓰인다.

서방 전문가들은 이를 ‘양회 퍼즐’이라고 불렀다. 미국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교수는 CNBC와 인터뷰에서 “중국 리더들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비용으로 치러야 하는 시장경제 원리를 모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영국 경제학자인 고(故)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파들의 힘이 거의 대등하면 경제 전략이나 정책이 절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케인스가 1929년 대공황 직후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이 구성한 연립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며 한 말이다. 라이벌끼리 타협하는 과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 뒤섞인다는 것이다.

정적집단(政敵團隊)의 치열한 경쟁
지난해 초 중국청년보가 중국 공산당 세력 관계를 분석했다. “양대 정적집단이 공산당 안에 존재하고 있다”며 “경쟁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타협한다”고 청년보는 전했다. 영미식 양당 구도와 맞먹는 라이벌 관계가 공산당 내부에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 쳉리 선임 연구원은 중앙SUNDAY와의 전화통화에서 “공산당 내부 갈등은 포퓰리스트와 엘리트주의자들의 갈등 구조와 비슷하다”며 “양쪽의 갈등과 협력이 중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숙명”이라고 설명했다. 공산당 내부 파벌들이 경쟁하면서 타협해놓은 테두리 안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재 포퓰리스트의 중심은 이른바 단파(團派)로 불리는 세력이다. 단파는 공산주의청년단의 줄임말이다. 청년단 출신들이라는 얘기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좌장이다. 차세대 주자 가운데 하나인 리커창 부총리도 단파로 분류된다. 단파는 대부분 시골 출신이다. 최고 교육을 받았지만 전문성은 떨어진다. 이들은 경제 성장을 중시한다.

엘리트주의자들의 대표들은 이른바 태자당(太子黨)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태자당은 혁명 원로의 자녀나 인척들이다.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자칭리 전국정치협상대회 주석이 리더로 꼽힌다. 차세대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시진핑도 이 태자당 소속이다. 미 노스웨스턴대 빅터 쉬(정치학) 교수는 “서구식으로 보면 태자당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시장 자유화와 민간 부문 육성을 중시한다. 글로벌 시장 흐름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두 세력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타협하며 공존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한 더 큰 목표를 얻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얻어내는 셈이다. 그 결과가 바로 올해 양회에서 결정된 경제정책이다.

中 금융통화정책 라인은 태자당
중국 경제정책팀 수장은 원자바오 총리다. 그가 금융·재정·산업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경제정책 최고 책임자에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단파 출신이 앉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선 정책과 실무는 엘리트주의자들인 태자당의 수중에 있다. 금융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왕치산 부총리는 천안문 사태 때 강경파인 야오이린 전 정치국상무위원의 사위다.

중앙은행 인민은행장인 저우샤오촨도 태자당 일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혁명 원로이면서 건설부장을 지낸 저우지엔난이다. 저우지엔난은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을 발탁한 인물이다. 장쩌민은 품앗이 하듯이 2002년 저우샤오촨이 인민은행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셰쉬런 재정부장(장관)과 류민캉 은행감독위원장, 리강 외환관리국장은 전형적인 중국의 테크노크라트로 분류된다. 두 사람은 경제개방을 전후해 태자당 사람들과 함께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이들은 글로벌 흐름에 민감하고 개방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왕치산·저우샤오촨 등과 비슷하다.

금융정책 라인은 중국 내부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배워온 경제 논리에 치중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들은 포퓰리스트들이 중시하는 농촌지역 저소득과 실업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편이다.

브루킹스의 쳉리와 노스웨스턴대 빅터 쉬는 포퓰리스트와 엘리트주의자들이 경제 성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를 ‘베이징 컨센서스(합의)’라고 불렀다. 최대한 성장률을 높게 유지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시장원리가 아니라 행정 수단을 동원해 경제 체질을 개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에는 위안화 가치가 빠르게 오르는 일을 막는 것도 들어 있다. 그래서 “미국 쪽과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며 “경쟁하는 세력의 합의(컨센서스)여서 유연성도 떨어져 쉽게 정책방향을 바꾸기도 힘들다”고 빅터 쉬는 말했다.

‘안티금융’ 바람이 거센 워싱턴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에선 한동안 은폐됐던 갈등이 불거졌다. ‘월스트리트(금융) vs 메인스트리트(비금융)’ 갈등이다. 독립선언 직후에 등장해 현재까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갈등 구조다. 애초엔 화폐 발행권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메인스트리트는 주정부가, 월스트리트는 연방정부가 화폐 발행과 은행 인허가권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은 19세기 후반 이후 금융 독점세력(머니 트러스트)에 대한 공격으로 바뀌었다. 메인스트리트는 JP모건 등 머니트러스트가 산업을 지배한다며 ‘금산 분리’를 관철시켰다.

메인스트리트는 비금융권 경영자와 노동자·농민·중소 상공인 등이다. 주로 돈을 빌려 쓰는 쪽이다. 대체로 돈을 풀어서라도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의 머니게임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이 의회나 백악관을 장악하면 금융 규제가 강화되곤 했다.

주식투자가 대중화되면서 양쪽의 간극이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연기금을 통한 주식 투자로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가 하나가 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양쪽이 하나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위기 때문에 메인스트리트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파산자와 실직자가 급증했다. 메인스트리트가 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를 구제하는 데 가장 큰 부담을 졌다.

버락 오바마 경제팀에서 메인스트리트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폴 볼커다. 그는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80년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내며 인플레이션 사냥을 지휘했다. 월스트리트 규제를 푸는데 강하게 반발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과 충돌했다. 87년 FRB 의장 자리를 앨런 그리스펀에게 넘겨준 이유다.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메인스트리트에 가깝다. 그는 경기 부양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오바마 경제팀이 내놓은 경제회복과 실업대책은 모두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바마 경제팀 좌장인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장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90년대 금융 규제 완화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는 경기회복과 실업해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볼커 룰, 주도권 변화의 상징
월스트리트 창구를 꼽는다면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들 수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오바마 경제팀이 아니지만 월스트리트에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이 그린스펀이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만큼 월스트리트와 가까운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소장은 “두 사람의 일이나 경력을 보면 메인스트리트보다 월스트리트에 가깝다”고 말했다.

오바마 경제팀은 처음에 불 끄는 데 정신이 없었다.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으면서 추락하는 경제를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제팀 내부에 큰 이견이 드러나지 않았다. 서둘러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경기 부양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를 오바마 집권 초기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말했다.

당시 폴 볼커는 뒷방 노인 취급을 당했다. 금융개혁을 주장했지만 오바마 경제팀 내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서머스나 로머는 경기 부양을 추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중반 일단 불길이 진정됐다. 위기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금융개혁 논란으로 이어졌다. 마침 뉴저지 등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졌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절실해졌다.

오바마는 볼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금융개혁안으로 내놓았다. 대형 금융회사가 헤지·사모 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고 투자와 상업 은행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월스트리트 운신의 폭을 죄는 개혁안이다. 내부에서는 가이트너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오바마 경제팀 분위기는 규제 강화 쪽으로 기운 듯하다. 버냉키가 의회의 FRB 회계감사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 전체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경기 부양에서 금융개혁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워싱턴 컨센서스 가운데 바뀌지 않는 것은 두 가지다. 출구전략 추진을 최대한 미루고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일이다. 모두 경기회복과 관련이 크다. 오바마 경제팀은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수출을 늘려 경제를 회복하려고 한다. 위안화 저평가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오바마 경제팀이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은 다음 달 환율 조작국을 발표한다. 중국 포함 여부를 두고 최근 두 나라 사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베이징과 워싱턴 컨센서스가 정면 충돌하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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