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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와 야만, 주술과 정령이 꿈틀대는 이단의 세상

지난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슈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예술가였다. 수차례 내한 공연에서 각별한 애정을 표했고, 5년 전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컷(Rough Cut)’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세계 무대에 선보이기도 했다.

정재왈의 극장 가는 길 - LG아트센터 피나 바우슈의 공연 ‘봄의 제전’과 ‘카페 뮐러’

이제 이승에 없으므로 바우슈를 만나는 길은 작품밖에 없다. 그녀는 자신의 분신으로 세계 무용사에 길이 기록될 ‘봄의 제전’(1975년)과 ‘카페 뮐러’(1978년)를 통해 한국을 다시 찾았다. LG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 공연에 초대된 것이다.

흔히 바우슈의 무용을 독일어로 ‘탄츠테아터(Tanzteater)’라고 한다. 직역하면 ‘무용극’이지만 ‘극적인 무용’이라고 의역해 보면 이해가 좀 쉽다. 매우 추상적인 현대무용의 여러 계통 가운데 바우슈는 무용에 극적 요소를 넣어 ‘스토리 있는 무용’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과 연극처럼 읽기 편한 형식은 아니다. 탄츠테아터도 현대무용인 이상 ‘내재율’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보인 ‘봄의 제전’과 ‘카페 뮐러’는 바우슈의 탄츠테아터 역사에서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후 나온 작품들에 비해 독해가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 중 ‘봄의 제전’은 1979년 한국 초연 때 제물로 뽑힌 여성 무용수의 상반신 일부가 드러나자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러시아 고대 전설에는 대지의 평온과 풍요를 기원하며 처녀를 간택해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이 전설을 모티브로 ‘봄의 제전’을 작곡했는데, 야만과 원시의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 오는 높은 리얼리티 때문에 1913년 니진스키를 필두로 무용가들이 탐을 많이 냈다. 바우슈도 이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바우슈는 ‘봄의 제전’을 가장 원형적인 모습으로 재현했다. 음악 외에 거의 인공 첨가물이 가미되지 않는 원시의 자연 그대로를 무대에 옮겨 놓았다. 엷은 황토색 흙이 깔린 무대 위의 주인공은 오직 무용수들뿐. 최소한의 의상만 걸친 이 야성의 남녀들은 서로 대립하고 뒤엉키면서 광란의 카니발을 펼친다. 조각 같은 남성 무용수들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넘치는 여성 무용수들의 격정적인 율동에 몰입하다 보면 ‘봄의 제전’은 어느새 나비족이 사는 ‘아바타’의 세계로 다가왔다. 그곳엔 원시와 야만, 주술과 정령, 이단의 세상이 펼쳐졌다.

무용수들의 땀과 가쁜 숨으로 가득 찬 35분, 그 환희의 춤판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무용수 디타 미란다가 제물로 낙점됐다. 디타는 두 배쯤 되는 서양 여성 무용수에 비해 유난히 왜소한 체구로 그 자체가 ‘희생양’ 코드에 잘 맞았다. 하지만 아무리 발군의 움직임과 에너지가 넘친다 해도 너무 뻔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미 스트라빈스키가 구축한 굳건한 내러티브 위에 현대무용의 움직임을 그대로 입힌 ‘봄의 제전’이 여느 현대무용에 가까웠다면, 먼저 선보인 ‘카페 뮐러’는 바우슈의 색채가 온전히 묻어나는 탄츠테아터의 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목 그대로 의자들이 널려 있는 카페가 무대인 ‘카페 뮐러’는 유년 시절 카페 집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바우슈의 자전적 경험의 공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치 장애물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는 텅 빈 테이블과 낡은 나무 의자를 배경으로 각각 3명의 남녀 무용수는 벽에 몸을 부딪히고, 서로에게 몸을 내맡기기도 하고, 탈출도 시도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에 갇힌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이런 불규칙한 상황에서 스스로 이해의 단서를 찾아내는 게 바우슈 무용의 특징이다. 서로 소통이 목적인 카페가 닫힘의 공감으로 우울하게 남아 있는 역설의 이야기를 통해 바우슈는 현대인의 절대 고독과 소외를 말했다.

평소 안무가이면서 직접 무용수로도 출연하곤 했던 바우슈에게 ‘카페 뮐러’는 자신을 투영한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직접 출연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이 작품에서 헬레나 피콘이 그를 대신했다. 장신의 실루엣과 분위기는 영락없는 바우슈였다. 덕분에 퍼셀의 오페라 세 편에서 뽑아낸 비장한 아리아에 실려 ‘카페 뮐러’는 바우슈를 한국의 무대에 불러내는 초혼의 무대가 됐다. 2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공연예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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