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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메주ㆍ물ㆍ소금...베란다는 어느새 장독대

이번 주부터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를 연재합니다. 18년 동안 살았던 경기도 이천 흙집을 떠나 올 3월 서울의 아파트로 집을 옮긴 문화평론가 이영미씨의 먹을거리 이야기입니다. 도심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생태적 삶의 맛과 멋이 펼쳐집니다.
이씨는 친가·외가·시댁이 각각 경기도 개성·전북·경남에 흩어져 있어 콧대 높은 개성 입맛과 맛깔스러운 전북 음식, 푸짐하고 걸진 경남 바닷가 밥상을 골고루 맛본 미식가입니다. 밥상머리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품평회를 벌였던 친정 식탁문화 덕에 남달리 예민한 입맛이 더욱 다듬어졌답니다. 연극과 가요ㆍ드라마 등에 대한 평론과 연구 활동이 본업이지만 음식 만들기와 음식에 대한 글쓰기를 즐거운 외도이자 여가로 즐기고 있습니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1> 아파트서 장 담그기


경기도 이천 시골에 살다가 서울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집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한 몇 가지 사항이 있었다. 첫째, 서울치고는 공기가 좋을 것. 시골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무가 좀 많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둘째,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은 집. 아마 이걸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들은 발코니 확장하느라고 얼마나 큰돈을 들이는데, 이걸 안 한 ‘후진’ 집을 구하다니!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장을 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천 시골로 들어와 장 담그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간장병·된장통 들고 친정집 드나드는 일을 끝냈다. 드디어 엄마의 장에서 독립했다. 좀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김치에서 독립했을 때보다 훨씬 더 성취감이 컸다.

그러니 내가 다시 18년 만에 아파트로 복귀한다고 해서 그 장을 포기할 순 없다. 이제 팔순이 된 엄마가 다시 장을 담가 줄 수도 없고, 내가 장을 담가 갖다 드려야 할 판이다. 조선간장 없이 음식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에게는 작은 항아리라도 놓을 베란다가 필요했다. 아니면 꼭대기 층을 구해 옥상이라도 이용해야 했다.

이제 내 또래 쉰 살 부근의 사람들조차 장을 담가 먹는 이를 찾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장에 대한 결핍감은 30대조차 갖고 있다. 웬만한 국은 다 소금을 넣어 끓인다 치더라도 미역국만은 도저히 소금으로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쉬운 대로 까나리액젓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 생선으로 맛을 낸 액젓이 깔끔한 간장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막상 장을 담가 보니, 솔직히 말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아파트에 살던 때 장 담그기를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순전히 괜한 두려움 때문인 셈이다. 장독대가 없는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두려움, 장 담그기가 복잡할 것이라는 두려움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고층 아파트의 2층 베란다에서도 장을 담가 드셨다. 장 담그기는 미역국 끓이기보다 쉬우니, 말 그대로 괜한 두려움이다.
지금이 올해 장 담그기의 마지막 기회다. 원래 장은 음력 정월 말 정도가 제일 좋은데, 지금도 아주 늦지는 않았으니 시도해 볼 만하다.

일단 초심자는 메주를 사는 게 좋다. 메주 띄우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철도 지났으니 지금은 사는 수밖에 없다. 메주는 ‘말’ 단위로 판다. 즉 콩 한 말로 만든 메주를 한꺼번에 파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양이 매우 많고 가격도 6만원이 넘어 좀 부담스럽다. 그러니 3~4명 정도 멤버를 모아 보라. 한 말이 대개 메주 3~4덩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짝을 맞춰 딱 한 덩이만 가지고 시작하는 게 가격도 양도 만만해 좋다. 메주 고르는 걱정 같은 건 안 해도 된다. 요즘 농협이나 친환경식품점에 포장돼 나오는 웬만한 메주는 다 잘 뜬 메주다.

다음에 필요한 것은 항아리다. 이천 도자기 판매장에 널린 게 항아리이고, 인터넷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항아리는 사이즈도 구체적으로 표시해 놓았으니 메주 딱 한 덩어리 들어갈 정도 크기의 작은 항아리 하나를 산다. 색깔은 검게 반짝거리지 않는 것이면 되고, 정 미심쩍으면 좀 비싸더라도 아예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가 만든 ‘청송옹기’ 같은 것을 사면 된다. 값이 좀 비싸다 싶겠지만 한 번 사면 평생 쓸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게 아니다.

항아리에 물을 붓고 소금(굵은 소금이나 볶은 소금)을 푸는데 더 이상 녹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넣으면 된다. 이때 달걀을 띄워 보면 물 위에 노출된 부분이 500원짜리 동전 정도 크기면 된다. 물론 더 진한 소금물이어도 상관없다. 장이 좀 짜지기는 하지만 상할 염려가 없으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소금만으로도 음식을 하는데 이 정도 간장이라도 감지덕지 아닌가.

이 소금물에 메주를 띄워 놓고(마른 고추와 숯을 띄우면 더 좋다) 공기가 통하는 유리뚜껑을 사다 덮으면 모든 일이 끝난다. 이제 4~6주만 기다리면 된다. 4~6주가 지난 뒤에는 메주를 건지고, 나머지 간장을 냄비에 넣고 팔팔 끓인다. 어릴 적 구경한, 장 담그는 날의 엄청난 노동을 상상하지 말라. 조그만 항아리이니, 장 달이는 양도 큰 냄비 하나면 족하다. 엔간히 식었으면 다시 그 항아리에 부어 놓고, 그때부터 먹기 시작하면 된다. 여름에 가끔 들여다보고 표면에 뭔가 끼는 듯하면 다시 끓여 놓기만 하면 된다.

규모로 보자면 소꿉장난 수준이고, 정말 일도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장이면 한두 해 충분히 먹고 남는다. 십수 년 전 이걸 처음 해 보고는 ‘도대체 이 쉬운 걸 왜 여태 안 했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삿짐을 꾸리면서 이천에서 쓰던 한 말 들이 항아리는 아깝지만 처분했다. 향긋한 장 냄새가 밴 정든 항아리를 남에게 보내려니 섭섭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파트 사이즈에 맞는 작은 항아리만 몇 개 들고 와서 장을 한 덩어리 담갔다. 이제 많이 장을 담가 퍼 주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두 식구에 이 정도면 족하다.
아 참. 간장에서 건진 메주는 어떻게 하느냐고? 그게 된장의 주재료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신구 선생은 아니지만 오늘 내 마지막 멘트도 이거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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