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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하되 판단하지 않는 회색 언어...두텁고 질기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짙은 운무에 싸인 산 속의 두 인물은 무슨 생각을 할까. 뭔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듯한 중국의 회색 이미지와 흡사하다.
중국의 여러 문화 현상을 단면적으로 자르고 캐서 모자이크 식으로 끼워 맞추는 방법, 가져다가 오려 이 ‘키워드 중국’에 붙이는 식. 이 글을 연재하면서 독자들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에 젖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험과 사유라는 체에 걸러진 결정체들을 한데 모아 논리로 구성하는 작업은 늘 필요하다. 우리가 ‘대상’을 앞에 두고 ‘인식’이라는 작업을 수행할 때는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특히 우리가 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중국, 그러나 제대로 말을 해 보라면 역시 막막하기만 한 중국에 대한 경우가 그렇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 -회색(灰色) <8> ㆍ끝

‘회색’이라는 코드에서는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삼국지연의』 속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의심을 비켜 가기 위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빛을 감추려 노력했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고사성어를 먼저 소개했다. 도광양회는 현대의 덩샤오핑(鄧小平)에 이어 중국 지도부의 일관된 입장이자 대외 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중국이면서도, 늘 낮은 자세로 세계 제1의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고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은밀히 전 세계 자원부국의 저변(底邊)을 훑고 다니는 중국이다.
세속을 멀리하는 은자(隱者)는 사실 중국에만 그 전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은일(隱逸)을 추구했던 철학자와 세파(世波)가 싫어 속세를 탈피해 자연과 벗해 온 음유(吟遊)적 시인과 문인들은 세계 곳곳에 나름대로의 전통을 남겼다. 그러나 중국은 그 전통이 매우 뚜렷하고, 심지어 사상적 유파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던 적도 있다. 유교의 공자나 도교의 노자, 그 중간적인 사상의 유파들 모두 은자의 전통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이다.

‘하다 안 되면 떠난다’는 식의 자세는 엄격한 도덕의식으로 무장한 뒤 현실 참여를 부르짖었던 공자에게서도 발견된다. 은자에 대한 존중도 있다. 공자가 ‘길’을 잃었을 때 그 길을 물었던 대상은 은자 두 명이다. 공자가 물은 길은 상징적인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생을 살아 나가는 길, 세상을 구하는 길, 그런 추상적인 개념의 길이었으리라. 그 답을 은자에게 구했던 공자는 결국 은자에게서 지혜를 찾고자 했던 사람이다. 숨어 지내는 이에 대한 공자의 생각이 어땠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달을 그리는 중국인의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변의 구름을 그림으로써 달을 드러내는 방법. 직접적인 서술이 아니다. 우회적이면서 간접적인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뭐든지 직접 표현하는 일보다는 은근하면서 한 번 돌아가는 식의 표현이 중국에서는 많이 쓰인다.

중국인들은 바람 앞에 서지 않는다. 바람은 위기와 변화의 상징. 그것이 닥치더라도 직접 그를 맞는 것은 우둔하다. 숨어서 바람의 전면을 비켜 가게 한 뒤 그 바람이 몰고 온 환경적 변화를 먼저 살핀다. 그 뒤에 대응하는 게 맞다. 먼저 나서 바람을 맞아 뚫고 나가는 것은 아래 중의 아래, 하지하(下之下)의 대응 방식이다.

가리고, 숨기고, 돌아가고, 기어들어가 자신을 감추는 전통은 전쟁의 수행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앞 회에서 설명한 6·25 참전 중공군의 전술 구사를 보면 특히 그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정면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설령 정면을 강타하더라도, 그것은 시늉에 불과했다. 늘 우회해 옆을 겨냥했고, 상대의 모습을 멀쩡히 보면서 공격할 수 있는 대낮을 피해 어두운 밤에만 공격을 해 왔다. 우회와 매복, 기습과 야습은 가장 돋보이는 중공군의 전투 방식이었다.

중국인은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낯선 중국어 한마디다. ‘하이싱’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還行’이라고 적는다. 뜻은 ‘괜찮다’ 정도다. 우리도 ‘괜찮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중국은 훨씬 많다. 가부(可否), 호불호(好不好), 시비(是非) 등을 묻는 경우에 중국인은 거의 백이면 백 모두 ‘하이싱’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좋다는 거냐, 나쁘다는 거냐?” 하고 다그쳐도 중국인은 그저 웃으면서 “하이싱”이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답답한 한국인은 더 추궁한다. “좋은지 나쁜지를 확실히 말하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한 번쯤 더 “하이싱”이라고 할 것이다. 화가 치민 한국인이 더 바짝 들이대야 “부춰(不錯:좋아)” “팅하오(挺好:아주 좋아)” “랴오부치(了不起:대단해)” 등으로 점차 표현을 끌어올릴 것이다. 원래는 좋고 나쁨, 되고 안 됨 등에 대한 표현은 다 있었다. 그러나 첫 대답은 반드시 ‘하이싱’이다.

일상적인 언어는 그 사회의 근저에 흐르는 사상과 관념을 모두 담는다. 그 언어적 관념에 담겨 있는 내용을 숙지하면 그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떤 사유(思惟)의 경향을 담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다.

중국은 가리고 숨기고, 은폐하고 엄폐하면서 자신을 좀체 내보이지 않는 사유적 특성을 띠고 있는 사회다. 그 언어 속 대표적인 표현이 위의 ‘하이싱’이다. 내가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지향하는 가치(價値)는 무엇인지, 나의 셈은 어떤 것인지를 일단 숨기고 가린다.

가치 판단을 유보하는 듯한, 그래서 늘 뭉뚱그려 표현하는 방식의 언어적 습관은 중국어에 강하게 발달돼 있다. 대부분 비슷비슷하고 특별할 게 없다는 식의 표현은 “차부둬(差不多)”다. 우리 식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게 그놈’ 하는 식이다. ‘차부둬’는 중국의 매우 일상적인 회색 언어다. 그런 광역(廣域)의 회색지대에 ‘초록은 초록, 빨강은 빨강’ ‘한 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 식의 직선적이면서 단순한 구분법은 통하지 않는다.중국의 회색은 질기고 두텁고,때로는 무섭다.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그간 사랑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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