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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58>펜클럽과 모윤숙

시인 모윤숙
한국 문단에서 모윤숙 시인만큼 파란 많고 굴곡 심한 인생을 살다 간 문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1910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난 모윤숙은 이화여전 졸업 후 몇몇 여학교의 교사로 일하면서 시 동인에 참여하는 한편 33년 첫 시집 '빛나는 지역'을 내고 문단에 데뷔했다. 모윤숙은 이화여전 재학 시절만 해도 애국시를 발표했다가 일경에 체포되는 등 강한 민족의식을 드러냈으나 40년을 전후해 신문·방송의 기자 일을 하면서 몇몇 친일단체에 가담해 활동한 것이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가정생활 역시 평탄치 못했다. 34년 이광수의 중매로 안호상(정부 수립 당시 초대 문교부 장관)과 결혼해 36년 딸을 낳고, 37년 대표작인 ‘렌의 애가’를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에 장애물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윤숙이 안호상의 가부장적 권위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안호상이 모윤숙의 친일 행각에 분개하면서 이들은 곧바로 별거에 들어갔다. 이들은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법적인 혼인 관계는 유지하다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 같은 복잡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모윤숙이 광복 후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매사에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그의 독특한 기질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의 각별한 유대도 미 군정 시절부터 시작됐다. 유엔 한국임시지원단장으로 한국에 와 있던 인도인 크리슈나 메논을 구슬러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토록 유도했고, 정부 수립 후에는 유엔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특히 6·25전쟁 중 부산 피란 시절에 인텔리 여성들을 모아 ‘낙랑 클럽’이라는 사교 모임을 만들었던 일은 오래도록 정계의 야화로 흘러다녔다. 이 모임은 정부의 고위 관료와 군 장성, 외교사절 등과 빈번한 접촉을 가지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로비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하나하나의 행적들은 이따금 스캔들성 화제로 이어져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윤숙의 그런 기질이 광복 후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얼마간 기여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종전 직후 국제펜클럽에 한국이 가입해 한국본부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도 모윤숙이 홀로 이룩한 성과였다. 54년 4월 파리 유엔총회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영국 런던에 들른 모윤숙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어떤 건물에 ‘PEN’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혹시 글 쓰는 사람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찾아 들어간다. 그곳은 국제펜클럽 본부의 사무실이었다. 모윤숙은 그곳 간부들에게 한국문학을 대충 소개하고 한국의 가입에 대한 언질을 받고 귀국했다.

그해 10월 23일 60여 명의 문인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펜센터’가 창설됐다. 초대 회장에는 변영로가 추대됐고, 부회장에는 김광섭과 모윤숙이 선출됐다. 그때부터 모윤숙은 펜클럽 한국본부의 터줏대감이었다.

하지만 모윤숙이 그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창립된 지 23년이 지난 77년, 그의 나이 67세 때였다. 60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잠시 회장직을 맡기는 했으나 곧 주요섭에게 물려주었고, 주요섭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백철의 ‘장기집권’이 15년이나 계속된 것이다. 백철의 연임이 계속되면서 핵심 멤버들은 ‘이제 그만 내려오시라’는 사인을 계속 보내고 있었으나 백철은 그때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70년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주최의 제37차 세계작가대회 때는 모윤숙에게 준비위원장을 맡기기도 했다.

모윤숙은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벌였지만 6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져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때 모윤숙을 구원해준 것이 37년 첫선을 보였던 일기체의 감상적인 장편산문시 ‘렌의 애가’였다. 이 책은 49년, 51년 중판을 거듭했으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6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해 모윤숙에게 큰 인세 수입을 안겼다. 자택도 없이 옮겨다니던 모윤숙이 화양동에 대지 340평의 큰집을 지닐 수 있게 된 것도 ‘렌의 애가’ 덕분이었다.

거의 모든 문학단체의 회장 혹은 부회장을 역임했고, 주요 문학상을 휩쓰는가 하면 71년에는 집권당인 공화당의 전국구 국회의원까지 지내지만 표면적인 화려함과는 달리 그의 내면에는 늘 어둠이 깃들어 있었고 고독했다. 80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마지막 10년을 병상에서 지내다가 90년 6월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한평생 짝을 부르며 목이 터지도록 혼자 울다가 쓸쓸히 죽어간다는 ‘렌’이라는 새의 모습이었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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