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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심장 쿵쾅거리고 정신 혼미해진다, 여기는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광장. 이곳에서 로렌초 데 메디치의 결혼식을 위해 성대한 말을 타고 겨루는 창 시합이 열렸다. 신플라톤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한 로렌초는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1세기북스 제공]
가능하면 북섹션에 국내서를 많이 소개하려 하는데 평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저자들이 아직 지식생산보다는 지식유통 수준에서 머물러 있고, 번역서들은 대부분 전 세계에서 검증된 책이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큰 탓도 큽니다. 반갑게도 이번 주엔 눈에 띄는 국내서가 많았습니다. 이 중 예술에 관한 교양서를 세 권 골랐습니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김상근 지음, 21세기북스

316쪽, 2만원




‘스탕달 신드롬’. 백과사전을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천재적인 예술 작품을 보다가 쓰러질 것 같은 감동에 사무치는 현상을 말함”.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1783~1842)이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그림을 보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한 데서 비롯됐단다.



이 책의 지은이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준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피렌체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리며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피렌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좋은 도시란다.



이 책은 그런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단테와 보카치오, 미켈란젤로, 조토, 도나텔로, 우첼로와 그리고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까지 피렌체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천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단테의 『신곡』을 통해 알려진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단테가 아홉 살부터 기도하던 베아트리체를 훔쳐보던 곳이다)과 그가 훗날 그녀와 마주친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르네상스’라는 문화를 탄생시킨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을 짚어낸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몰입 자체가 ‘아름다움에 매혹 당하는 삶’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으로 개인의 감정이 통제된 중세와 결별한 일대 사건이었다는 설명이다. 단테가 피렌체 사람들을 탐미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절에 쓰여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는 유한한 삶을 체험한 유럽인들의 ‘달라진 생각’을 읽어낸다.



보카치오의 작품이 인간 욕망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보여준다면, 천사를 거룩한 모습이 아닌 속된 얼굴로 그려낸 화가 조토(1266~1337)의 그림은 ‘인간다움의 발견’이라는 혁신적 가치를 담아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작은 도시를 골목 골목을 누비며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물결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람 이야기’로 도시와 시대를 함께 조망한것으로, 읽는 재미와 내용의 풍부함에 있어서 손에 꼽을 만하다.



지은이는 르네상스의 흐름이 피렌체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은 것은 그곳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도시’였기 때문이라며 피렌체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생각해야 세상을 다르게 보고, 그래야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주 기자




위대한 예술 숨쉬는 땅 러시아 속살을 더듬다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

최하림 지음, 랜덤하우스

207쪽, 1만원




한때 우리가 소련이라고 불렀던 러시아는 이데올로기가 다른 탓에 낯가림을 해야 했던 땅이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러시아,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었던 소련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으며 감지했던 그들의 투쟁과 고통,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고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격정과 인정을 찾아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로 떠난 최하림(71) 시인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2004년과 2006년 두 번 러시아에 간다. 러시아에 갔다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러시아의 문인과 예술가들 넋을 더듬었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푸시킨·루블료프·체호프·파스테르나크·숄로호프가 머물던 방, 유품이 남아있는 기념관, 발걸음의 흔적이 아득한 골목골목을 돌아들며 그들의 속살을 헤집는 여정은 시인 자신이 들려 있는 예술 혼에 입 맞추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들 목소리를 빌려 우리를 돌아보는 시인은 아프다. “작가란 현실 가운데 있으면서 현실 밖에 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세계를, 또 다른 세계로 서술한다. 나는 이광수와 김동인이 이웃 사람들과 지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톨스토이 사도였다”고 고백한 시인은 톨스토이의 생가와 묘지가 있는 야스나야폴랴나를 뒤로 하며 말한다. “위대한 교사보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는 깊고 크다. 위대한 작품은 시대가 흘러가고 가치관이 변해도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준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다친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으되 위대한 교사는 역사로밖에 남지 못한다.”



스탈린 시대를 혹독하게 산 여성 시인 아흐마토바를 기리는 대목은 러시아에서 살다 간 작가들, 시베리아의 유형지를 헤매며 검은 몽상을 경험한 문인들을 추모하는 만가(輓歌)다. 스탈린 손에 남편이 총살당하고 아들은 유형당한 뒤 아흐마토바가 쓴 ‘레퀴엠’을 시인은 “내가 읽은 바로는 거의 뼈다귀뿐”인 시, 우리를 단두대 위에 서게 하는 시라고 평한다. “그 사랑은 슬픔과 기쁨을, 고통과 죽음을, 똥물과 탄식 같은 것을 수천 겹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시인은 수피가 하얀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고 망연(茫然)하다. 시인은 어두운 시대, 침묵의 만남에 깊이 끌린다. “시베리아는 끝도 시작도 없으며 밤도 낮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검되 푸르렀다.”



정재숙 선임기자






프랑스 문호 프루스트 그와 교류한 화가 15인 …



프루스트의 화가들

유예진 지음, 현암사

349쪽, 1만6500원




르누아르의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1881년)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실크해트를 쓰고 정장을 걸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누구일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이 그림을 연상시키는 묘사가 등장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고전이 되어버린 책이기에 관련 서적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 번역서다. 이 책은 드물게도 국내저자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해설서다. 프루스트의 작품에는 수많은 화가와 그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3000쪽이 넘는 대하드라마에 프루스트는 프랑스의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했던 흔적을 꼼꼼히 담았던 게다. 저자는 그 중 주요 화가 15명을 선정해 프루스트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르누아르의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로 돌아가보자. 프루스트의 소설에는 ‘엘스티르’라는 가상의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묘사된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후원자 샤를 에프뤼시(1849~1905)를 정장 차림으로 그림에 그려넣었다. 샤를 에프뤼시는 프루스트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프루스트는 소설에 ‘샤를 스완’이라는, 그를 모델로 한 유대계 미술품 수집가를 등장시킨다.



그러나 소설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들 사이에서 그 작자는 잔뜩 멋을 낸 시골에서 올라온 벼락부자 같은 모습이 아닌가?”라며 샤를을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를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드레퓌스 대위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독일군 스파이로 몰려 종신형을 받으면서 프랑스 사회는 드레퓌스 파와 반 드레퓌스파로 나뉘었다. 르누아르는 반유대주의자였고, 유대인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받은 프루스트는 자신을 유대인이라 생각했다.



저자는 르누아르가 후원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되, 자신의 반유대주의를 그림에 생뚱맞은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해석한다. 반대로 프루스트는 드레퓌스 사건 이후 프랑스 사교계에 실망하고, 그들에게 쏟아부은 시간이 ‘잃어버린 시간’임을 깨닫고 홀로 예술에 정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밖에도 수많은 그림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프루스트의 작품과 그의 생애까지 엮어가며 솜씨있게 설명한다. 주요 화가를 배치한 순서는 절묘하게 이야기의 순서를 따라간다.



다만 같은 구절이 반복되는 예가 더러 있다. 대중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라지만 논문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도 조금 아쉽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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