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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돈 우습게 본 ‘먹물’ 들이 20세기 재앙 불렀다

지식인과 자본주의

앨런 케이헌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519쪽, 1만9000원




“오! 돈, 그 무서운 독, 영혼을 말라 죽이는 돈! 돈은 모든 잔인함과 비열함의 원인이며, 무시무시한 악….”



19세기 말 프랑스를 무대로 한 에밀 졸라의 소설 ‘돈’은 부르주아 세력과 돈에 대한 경멸·적개심으로 그득하다. 부르주아는 위선과 욕심으로 뭉쳐진 돼지인데, 그들에게는 돈이 곧 종교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거부심리는 19세기 지식인 그룹의 특징이다. ‘과시적 소비’란 말을 만들어낸 톨스타인 베블렌, 그 이전의 칼 마르크스 모두 자본주의 혐오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지식인 특유의 이상주의·허위의식과 함께 묘한 엘리티즘 탓이다.



이 책이 환기시켜주듯 기독교의 돈에 대한 비판은 더욱 혹독했다. “하느님과 맘몬(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 아니던가? 돈·부자에 대한 공격은 고대 그리스·로마는 물론 근대 이전 모든 문명이 그러했다. 일테면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키케로 역시 돈과 부자를 우습게 봤다. 키케로의 경우 의사·건축가·교사는 존경할만하지만, 음악가·조리사 등 ‘쾌락 종사자’나 세리(稅吏)·사채업자 그리고 특히 이윤을 추구하는 장사꾼은 멀리하라고 했는데, 조선시대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정신과 돈, 그 갈등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서양문화사 여러 권 합친 것보다 시야가 넓고 정보량도 빵빵하다. 매우 논쟁적인 이 책을 읽다가 내팽겨치거나 씩씩거릴 독자도 상당수이겠지만, 반대쪽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지난 세기 말 뒤늦게 이념의 홍수를 경험했던 한국사회의 오늘을 위한 성찰로 딱 좋다. 그만큼 ‘지식인 위선의 역사’ 혹은 ‘쾌도난마 서구 좌파이념의 역사’로 읽어도 문제없다. 저자의 말대로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사회과학이나 정치이념이라기보다 얼치기 신흥종교다.



돈에 대한 경멸은 지식인의 표상이었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 공산주의를 낳은 칼 마르크스, 철학자 에리히 프롬(사진 왼쪽부터) 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글북스 제공]
“마르크스는 역사에는 예측 가능한 끝이 있다고 가르쳤다. 최후의 날들이 있고, 부르주아 계급의 종말, 아니 모든 계급의 종말이 가까웠다. 1차 세계대전 후 이 주장이 더욱 그럴듯하게 비쳤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혁명을 거치는 길이며, 그리 멀지 않는 미래에 승리와 천국이 보장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의 필연이라는 신(神)을 믿는 무리다. …공산주의는 과학이기도 한 종교이다.”(292쪽)



저자는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의 미신”이라는 멕시코 현대작가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넌지시 소개한다. 19,20세기를 쥐고 흔들던 마르크스 레닌주의란 고대그리스 역사 이래로 부자와 돈 그리고 사유재산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라는 지적인데, 문제는 지식인이다. 그들은 체질적으로 “혁명과 곧잘 열애에 빠진다.”(334쪽) 혁명이 좋기보다는 몸 안의 반(反)자본주의 DNA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 지식인들은 지난 2세기 동안 소모적이고 잘못된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일으켜왔다. 이 과정에서 혁명가 노릇을 했건 단순동조자 역할에 그쳤건 20세기의 정치적 재앙에 지식인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문제는 반(反)자본주의 태도가 요즘 사회운동·문화운동으로 모습을 바꿨다는 점이다. 반미주의·반세계화운동·페미니즘·대항문화운동이 그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반기업 정서가 똬리 틀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뜬금없이 나타난 책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등장 타이밍이 딱 좋다. 죽은 지 이미 오래인 좌파 이념, 그러나 아직 유령처럼 한국사회를 배회하는 좌파 이념에 대한 깔끔한 사망진단서로 의미 있다. 내공이 느껴지는 저자는 알렉시스 토크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의 역사학자로 미 라이스대학을 거쳐 지금은 파리 아메리칸비지니스스쿨 교수로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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