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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흔드는 바람을 탓하지 말고”

오늘은 바람 불어 좋은 날.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죠. 3월 중순이니 새싹들이 많이 돋았겠다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강하게 불던지.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에 나무들은 온몸을 휘청이며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땅에서도 낙엽들이 흙마저 쓸어버릴 듯이 세차게 굴러다니고 있었죠. ‘이렇게 바람이 계속 불면 언제 싹이 돋지?’ 마음 한 켠에 슬며시 걱정이 일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산수유가 보였습니다. 이제 막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죠. 조금 더 걸으니 개나리도 보이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보니 나무마다 가지마다 움이 트고 있었죠. 자세히 보니 화단 여기저기에 새싹들이 빼곡히 돋아 있었습니다. 아직 응달에는 눈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말이죠. 양지 바른 곳에는 파란색 꽃도 피어 있었죠. 이 추위와 바람 속에 돋아난 싹이라 그런지 더 기특하고 대견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건드려 보았죠. 보기에는 여리고 약해 보여도 꽤 단단했습니다. 흔들림이 없어 보였죠.



봄에 바람이 셀수록 꽃과 나무는 뿌리에 힘을 싣습니다. 뿌리를 더 깊이 뻗어 내리고 생명의 물을 힘껏 빨아당기는 거죠. 그렇게 봄바람에 뿌리를 굳건히 해야 가지와 잎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야 꽃피고 열매 맺는 여름과 가을에 뜨거운 햇살과 폭풍우, 무서리도 견딜 수 있는 거고요. 결국 꽃과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건 이 초봄의 바람 때문입니다. 잎을 때리고 뿌리를 흔드는 바람이 야속한 것 같아도 생명을 지켜 주는 고마운 바람인 거죠.



[그림=김회룡 기자]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늘 크고 작은 바람에 흔들립니다. ‘파란고해(波瀾苦海)’라고 하죠. 고통이 끊임없는 인간 삶을 파도가 멈추지 않는 바다에 비유한 말입니다. 바람이 멈추지 않으니 파도가 끊임이 없죠. 정말 우리는 평생 우리를 흔드는 이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죠.



여기서 우리를 ‘끊임없이 흔드는 바람’을 두고 원불교에서는 ‘경계(境界)’라는 표현을 씁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을 흔드는 경계’인 거죠. 바람이 불어오면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경계를 만나면 우리 마음이 움직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이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마음이죠. 내 안의 수많은 기대와 바람, 욕심과 집착, 시기와 질투, 오만과 편견 등이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불어오는 바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마음을 먼저 봐야죠. 출렁이는 파도가 문제가 아니라 흔들리는 내 배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 거죠.



하루 하루의 일상에서 나의 마음을 흔들고, 우리의 배를 위협하는 바람도 가지가지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장생활, 뜻대로 되지 않는 사업, 직장이나 사회에서 부대끼는 인간관계, 크고 작은 가정사 등으로 속상하고 힘들 때가 있죠. 때로는 쓰나미가 몰아칩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을 비롯해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이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죠. 바람이 불어오고, 5m·10m 파고가 치솟아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며 위협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어오는 바람을 탓하며 ‘왜 나만?’을 외치며 억울해하고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직면해야죠. 내 안의 마음을 보고, 내 배의 크기를 점검해야죠. 바람과 파도를 직시하는 지혜의 빛을 밝히는 겁니다. 내 마음에 욕심이나 시기심, 선입견이나 편견이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경계는 스스로 물러갑니다. 만일 나의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해 경계가 벅찬 경우라면 잠시 그 경계를 피하거나 다음 기회로 미룰 수도 있겠죠. 그것도 아니고 직면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지혜를 모으고 용기를 내 처리하고 극복해야죠. 이렇게 우리가 불어오는 바람에 직면해 성실하게 대응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힘이 쌓입니다. 성장하는 거죠.



살다 보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경계와 바람이 우리를 흔듭니다. ‘번뇌가 보리’라고 했죠. 정신만 차리면 그 모든 경계와 바람이 깨달음의 기연이 되어 줍니다. 성장의 디딤돌이 되는 거죠. 만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죠. 사랑을 주는 사람도 있고, 괴로움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스쳐간 인연들은 모두 은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랬죠.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서는 사랑 주는 법을 배웠고, 고통 받은 사람에게선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정말 마음만 챙기고 보면 일상의 모든 크고 작은 경계들이 나를 이끌어 주는 스승이죠.



그러니 우리를 흔드는 바람이 멈추기를 바랄 일이 아니죠. 오히려 그 바람을 공부의 기회로 삼고 성장의 자양분이 되게 해야죠.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좌절이나 갈등, 스트레스 등이 불평의 대상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좌절이 있기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열리고, 갈등이 있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스트레스 또한 마찬가지죠.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기에 삶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개발하게 됩니다. 마주하기 따라 우리를 흔드는 바람이 오히려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죠.



오늘도 바람이 불어옵니다. 나무는 또다시 뿌리로 힘을 모아 생명의 기운을 힘껏 빨아올리겠죠. 우리 이 봄에는 우리 삶의 뿌리인 마음을 챙겨 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바람을 탓하지 말고, 그 바람에 고통 받지 말고, 오히려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보는 거죠. 그러면 우리를 흔드는 수많은 사람과 경계를 향해서도 우리는 두 손을 모을 수도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김은종(법명 준영) 교무·청개구리선방

그림=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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