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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낯선 아찌가 고추 보자면 어떻게 해야죠?”

#구름이 집에 놀러 온 송화. 집에는 구름이 삼촌뿐이다.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송화에게 삼촌은 “심심하지? 병원 놀이 하자”고 한다. 진찰을 하려면 침대에 누워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구름이 삼촌. 송화가 외친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삼촌은 당황해서 송화를 집으로 보낸다.



굿네이버스 실버 인형극단

#놀이터에서 혼자 놀던 퉁퉁이에게 낯선 아저씨가 다가와서 휴대용 전자오락기를 보여준다. 정신 없이 오락을 하는 퉁퉁이. 아저씨는 “유희왕 카드도 있다”며 퉁퉁이를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 갑자기 “고추를 보여주면 장난감을 주겠다”는 아저씨에게 퉁퉁이는 외친다. “안 돼요!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 아저씨는 달아난다.



#별님이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나쁜 아저씨가 내 잠지도 만지고 가슴도 만지고 나쁘게 했어요.” 엄마가 별님이를 꼭 안아준다. “별님아, 많이 놀랐지. 엄마가 있으니까 이제 괜찮아. 우리 별님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나쁜 아저씨가 벌 받게 경찰에 신고하자. 엄마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굿네이버스 실버 인형극단’ 할머니들이 18일 서울 화곡4동 대평 어린이집을 찾아 성 학대 예방 인형극 공연을 마친 뒤 어린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18일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화곡4동 ‘대평 어린이집’. 4~6세 어린이 80여 명이 성 학대 예방 인형극 ‘우리 몸은 소중해요’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구름이와 퉁퉁이, 별님이의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했다.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주인공들이 위험에 빠지면 “안 돼요!”라며 함께 소리도 질렀다.



인형극이 끝나자 인형이 매달린 길다란 막대를 든 할머니들이 검은 장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 저희는 ‘굿네이버스 실버 인형극단’입니다. ‘실버’라고 하면 모르겠죠. 음…할머니처럼 이렇게 머리가 하~얗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거예요(웃음).”



김남수(87) 할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신승희(5)양이 “할머니들이 나와서 깜짝 놀라고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김세원(5)양은 “나쁜 아저씨가 오면 ‘안 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도망갈 거예요”라고 했다. 이태규(5)군은 “다른 데서 본 인형극보다 훨씬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실버 인형극단은 모두 12명. 평균 나이 77세다. 유치원·초등학교 등에서 300차례 넘게 무료 공연을 했다. 2003년 8월 춘천 세계인형극제에서 아마추어 연기상도 받았다. 2005년엔 일본 이시다 인형극 축제의 초청을 받아 공연도 했다. ‘혹부리 영감’ ‘빨간 모자’ 등 주로 동화를 각색해 공연한다.



2003년 3월 방화2사회복지관에서 할머니들이 인형극을 배우면서 극단이 만들어졌다. KBS 인형극을 담당했던 여영숙(57)씨가 지도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인형이 제법 무겁거든요. 어깨마다 파스를 붙이고…. 가족들이 그만두라고도 했죠.”



권춘화(71) 할머니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장막 위로 인형을 치켜들고 조작을 하면 팔이 금세 뻣뻣해졌다. 대사는 미리 녹음하는데 대사보다 몇 초 정도 늦게 인형을 움직여야 움직임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극이 진행되는 동안은 늘 긴장 상태다. “손도 보이면 안 되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인형들 높이가 비슷비슷하도록 조절하는 일도 쉽지 않아요.” 유선금(80) 할머니가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인형극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든지도 모른다 했다. 금혜경(66) 할머니는 “지난해 손녀 아영이(9)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공연했다”며 뿌듯해했다.



인형도 할머니들이 직접 만들었다. “우리 세대는 모두 재봉틀 정도는 다룰 줄 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들이다. 인형극 장비는 어른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상자 세 개 분량이다. 공연 전 무대를 준비하는 데에만 1시간이 걸린다.



실버 인형극단은 지난해 3월 성 학대 예방 인형극 공연을 시작했다.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가 극단에 협조를 요청했다. 굿네이버스 아동학대문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인형극 내용을 만들었다. 할머니들은 여영숙씨와 함께 인형을 디자인하고 극으로 꾸몄다. 예방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김길태 사건에 대해 묻자 할머니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일태(82) 할머니가 “참말로 그런 일은 없어야 된다”고 입을 열었다. 전종요(82) 할머니는 “그런 일 일어날 때마다 얼마나 살이 벌벌 떨리노”라며 한숨을 쉬었다.



금혜경 할머니는 “이런 사회를 만든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안상분(69) 할머니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성 학대 예방 인형극을 하러 다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맞다. 아까도 아이들이 인형극을 보면서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척척 잘 따라 하지 않더냐”며 맞장구를 쳤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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