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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문득 그리운 ‘원주의 예수’ 장일순

근·현대사의 걸출한 인물 중 나는 인간미 넘치는 남강 이승훈에게 유독 끌린다. 옹기 팔아 번 돈으로 1907년 평안도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했는데, 교사로 다석 유영모와 씨알 함석헌, 작가 염상섭·김억·홍명희가 즐비했으니 민족운동의 사관학교였다. 남강만큼 도산 안창호도 매력적인데, 그건 영문학자 피천득의 회고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명성 그대로라고 느낀 건 하나는 금강산이요, 또 하나는 도산”(『대화』15쪽)이라는 증언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하지만 이들은 시대도 그렇거니와 나와 좀 멀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다가오는 분, 그럼에도 멋진 사람은 일속자(一粟子) 장일순(1928~94)이다. 바로 얼마 전 그의 일화 모음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을 접한 뒤 그리움이 부쩍 더 커지는데, 그를 좋아하는 이는 수두룩하다.



‘이아무개’란 이름으로도 통하는 목사이자, 저술가인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이”이라며 평생 그를 따랐고, 시인 김지하, ‘아침이슬’의 김민기도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고 장일순을 모셨다. 문학평론가 김종철도 한 번 보고 빠져 그의 생명운동을 계승한 게 환경잡지 ‘녹색평론’이다.



무엇보다 내게 그는 두툼한 책 『노자 이야기』(2003)의 저자다. 『도덕경』 해석을 이현주 목사와의 대담으로 담았는데, 노장을 이렇게 접근한 저술이 있나 싶다. 노장사상이야 천의 얼굴을 가졌다. 은둔의 철학으로 읽어도 좋고 제왕을 위한 정치철학으로 봐도 상관없지만, 장일순의 노장은 기독교에 동학사상이 가미됐다. 그게 희한한데, 결정적으로 노장을 말하는 사이로 탈속한 도인(道人)의 모습이 겹쳐지고 어른댄다. 참 흔치 않은 독서경험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장일순의 학문이 높다기보다 삶 자체가 지극했기 때문에 노장과 어깨가 비슷해진 경우라고….



그럼에도 장일순의 멋은 『좁쌀 한 알』(2004)에서 잘 드러난다. 신간 『나는 미처 몰랐네』도 그 책의 축약본이다. 유명한 가르침이 “밑으로 기어라!” “목에 힘을 빼!”이다. 사람 앞에 우쭐대지 말고, 서 푼짜리 아상(我相)부터 지우라는 권면, 우주의 뭇 생명을 모시라는 가르침이다. 아호 일속자도 좁쌀 한 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벙거지에 점퍼차림으로 싱긋 웃는 모습, 그게 장일순이다. 하지만 격이 높았다. 강원도 원주에서 눌러 살았으면서도 ‘원주의 예수’로 존경 받았다. 물론 사회활동도 많이 했다.



1950년대 이승만에 반대했다 해서 옥살이 3년을 했지만, 70년대 지학순 주교의 동지였다. 한살림운동 등 생활운동에 철저했다. 한때 불었던 해월 최시형과 동학연구 붐의 진원지도 바로 그였다. 시간 나면 마음공부 삼아 그림·글씨를 써 남에게 주곤 했는데 운 좋게도 나는 예전 한 점을 챙겼다. 그를 사숙하던 나무선이란 분이 판각(板刻)한 ‘無心(무심)’ 두 글자인데 범박한 맛이 예사롭지 않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를 그린 번듯한 전기·평전이 없다는 점이다. 주변에 글쟁이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이런 수수께끼가 없다. 사람을 못 키워내는 한국문화의 현주소가 그런 것일까?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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