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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골프 강국일 수밖에 없는 까닭

지난주 유럽여자투어(LET) ANZ레이디스마스터스 대회 참관차 호주 퀸즐랜드주의 브리즈번을 찾았다. 그런데 평소 청명한 날씨로 유명한 브리즈번에 때아닌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며칠째 굵은 비가 계속되자 우리 일행은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대회 진행에 차질을 빚은 건 물론이고 일행이 골프를 즐기는 데도 큰 지장을 줬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정도 비에 물러섰다면 우리는 골프강국 대한민국의 골퍼가 아니었을 게다. 대한민국 골퍼가 어떤 사람들인가.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한겨울에도, 수은주가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한여름에도 절대로 라운드를 포기하지 않는 게 대한민국 골퍼 아니던가. 장맛비가 내리면 비옷을 입고 티오프하고, 눈이 쏟아지면 컬러볼을 사서 눈밭에서 굴리고 다니면 그만이다. 천둥 번개 따윈 애시당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번개가 번쩍번쩍해도 대한민국 골퍼들은 힘차게 클럽을 휘두른다. 번개가 영 심하다 싶으면 그늘집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이고 나오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장대비에 진흙탕이 돼 버린 호주의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한 뒤 이렇게 한마디씩 했다.

“역시, 골프장은 한국이 최고야. 이 정도 비에 페어웨이와 벙커가 이렇게 질척거리다니…. 한국 같았으면 배수가 훨씬 잘 됐을 텐데 말야.”
대한민국 골퍼는 추위도 무섭지 않다.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1월 9일. 폭설이 내린 뒤 수은주가 영하 10도 이하로 곤두박질쳤는데도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을 찾은 이가 30팀을 넘었다. 100명이 넘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추위에 굴하지 않고 골프를 즐겼다는 것이다. 그다음 주말인 16일에도 날씨는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스카이72골프장 김유진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추운 데도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럼요, 내장객들에게 페어웨이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려도 ‘괜찮다’며 씩씩하게 필드로 나가시더라고요.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저희 골프장을 찾은 분도 계세요.”(필자는 김 매니저의 대답에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전국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2주 연속 주말 라운드를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골프 매니어는 익명을 요구하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2007년 경주 마우나오션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는 강풍 탓에 경기가 파행으로 치달은 대회였다. 3라운드 경기 도중 그린 위에 놓인 공이 움직일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자 대회 조직위는 2라운드 36홀 경기로 대회를 끝내버렸다. 그러나 브리티시오픈을 포함한 주요 대회에선 날씨 때문에 경기 일정을 축소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지금도 대회 축소 결정엔 아쉬움이 남는다. 날씨가 좀 풀렸나 싶더니 새봄을 앞둔 3월에도 큰 눈이 내렸다. 어린이들은 눈이 많이 와서 즐거운 모양이지만 주말 골퍼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골프는 온실 속의 스포츠가 아니며 눈과 바람, 비와 함께 즐기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누가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이게 바로 골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J-GOLF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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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