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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에 손 얹은 영국 여왕, 식민지 개척의 야망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 엘리자베스 1세의 아르마다 초상화(1588년께), 작자 미상, 개인 소장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던 영국을 열강의 지위로 이끈 뛰어난 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그 업적을 국민에게 선전하는 데에도 또한 뛰어난 군주였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프로파간다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자신의 초상화를 국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거의 최초의 군주라고 본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위풍당당하기 짝이 없는 ‘아르마다 초상화’(사진1)다.
이 그림에서 여왕은 정교한 레이스와 리본, 수많은 굵은 진주로 장식된 의상을 입고 있다. 그녀는 왕실 살림을 검소하게 한 편이었지만 의상은 이렇게 극도로 화려하게 해서 보는 사람들의 경외감을 유도했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진주를 즐겨 착용했는데, 진주는 순결을 상징해서 그녀의 ‘처녀왕(the Virgin Queen)’이라는 별명에도 잘 맞았기 때문이다.

여왕의 뒤로는 두 개의 창문이 보이는데 사실 이 창문 너머 광경들은 서로 다른 시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왼쪽은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 아르마다(Armada)가 영국 함대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바다의 제왕이었던 에스파냐는 아메리카와의 교역을 선점해 번영을 누리고 있었는데, 떠오르는 세력인 영국이 교역을 방해하자 1588년 영국을 침공하러 온 것이었다. 영국은 기동력 좋은 배와 장거리 함포로 맞섰고 화공(火攻)법을 써서 에스파냐 함대에 치명타를 가했다. 결국 이름답지 않게 패퇴하던 무적 함대는 폭풍까지 만나 극심한 손실을 봤다. 오른쪽 창문은 바로 이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여왕은 당당하게 지구본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잘 보면 손가락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하고 있다. 이제 에스파냐를 물리치고 바다의 강자로 떠오른 영국이 대서양 너머 신대륙에 본격적으로 힘을 뻗칠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본 당시 영국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여왕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탁월한 대국민 홍보물이 아닌가 싶다.
또 이 그림은 당시 유럽의 정치경제 상황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국가나 애국심 등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중세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엘리자베스 1세 같은 절대군주가 나타난 시기였다. 그리고 이런 군주들이 지구본을 하나씩 손에 들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해 원료를 확보하고 자국 산업을 키우며 무역 흑자로 금, 은 화폐를 축적할까 고민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바로 대항해 시대이며 중상주의(mercantilism)의 시대였던 것이다.
중상주의는 통일되고 체계화된 경제 이론은 아니었고, 다만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여러 국민국가 경제정책 수장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생각들을 가리킨다. 중상주의라는 용어도 이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18세기 후반에 애덤 스미스 같은 근대 경제학자들이 이 생각들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용어였다. 그러면 이 생각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절대군주들과 경제정책 관료들은 한 국가가 부유한 정도는 그 국가가 보유한 금, 은 등의 귀금속 양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수입보다 수출을 많이 해서 그 대금인 금, 은이 계속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국제교역은 어디까지나 제로섬 게임이었다. 무역 흑자를 보는 나라가 있으면 적자를 보는 나라가 있을 테고 그것은 무조건 손해로 간주되었으니 말이다.
2 빌라 메디치와 항구 풍경(1637), 클로드 로랭(1600∼1682) 작, 캔버스에 유채, 102×133㎝, 우피치 갤러리, 피렌체
또 중상주의자들은 무역 흑자를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자국의 제조업과 상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빠른 성장을 위해 선택된 제조업자와 상인들은 독점권이나 보조금 등의 특혜를 받았다. 이들은 그 답례로 왕실에 충성해서 절대군주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식민지였다. 자국 제조업에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고 때로는 광산을 통해 부의 척도인 금·은 등을 직접 공급해주니 말이다. 물론 식민지 원주민의 복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러므로 당시 바다를 가로지르던 상인들은 국가와 군주의 권위를 드높인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과 밀접한 항구 풍경을 화가들에게 주문했고 이것이 하나의 그림 장르로 굳어졌다. 고전주의적 풍경화의 대가인 프랑스의 클로드 로랭(1600~1682)은 이 장르에 특히 뛰어났다. 그의 ‘빌라 메디치와 항구 풍경’(사진2)을 보면 왼쪽에 웅장한 돛대의 배가 정박해 있고 해안에는 선원과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출 또는 일몰 무렵인지 저 멀리 수평선 위에 걸쳐진 해에서 빛이 퍼져 나오면서 그림에 깊이 있는 원근감을 준다. 또 이 햇빛은 그림 오른쪽의 단아한 건물들과 함께 이 항구와 상선들에 기품 있는 분위기를 부여한다.
3 콜베르의 초상(1666), 클로드 르페브르(1637∼1675) 작, 캔버스에 유채, 118×113㎝, 베르사유 성, 베르사유
중상주의 정책은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관료인 장-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에게서 그 정수를 볼 수 있다. 그가 재무장관인 동시에 해군장관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당시 경제 정책에서 해상 무역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였나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인기 초상화가였던 클로드 르페브르(1637~1675)가 콜베르를 그린 작품(사진3)을 보면 그는 훈장을 단 위풍당당한 모습에 지도로 짐작되는 서류를 들고 있다.
콜베르는 무역 흑자를 내기 위해 자국 업체들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문기술을 가진 외국 근로자들의 유입을 환영했고 반대로 자국 기술의 유출은 엄금했다. 그리고 몇몇 제조업체와 무역업체들에 특혜를 주어 집중적으로 키워서 외국 기업에 앞서도록 만들려 애썼다. 상품의 품질을 위해 군소업체들이 상품 제조에 뛰어드는 것을 규제했고, 완성된 상품의 품질 규정과 심사도 엄격히 했다. 또 철도와 운하 등의 교통망을 정비하기도 했다.

그의 정책은 프랑스 경제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많았다. 그러나 특혜와 진입 규제는 특혜 바깥에 있는 업체들의 불만을 낳았고 자유로운 경쟁의 기회를 줄였다.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콜베르의 의도와는 달리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켰다고 18세기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콜베르는 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매겼는데, 그러자 다른 나라들도 이에 맞서 프랑스 상품에 관세를 매겼다. 이 관세 전쟁은 17세기 말 네덜란드 전쟁을 초래했고, 콜베르는 국부를 위해 열심히 축적한 금·은이 전쟁 자금으로나 나가는 걸 보아야 했다. 훗날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무역정책을 비판하면서,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며, 자유로운 무역이 효율적인 국제 분업을 가져와 각국의 소비자들이 더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에 밀려 중상주의는 점차 쇠퇴했다.

그렇다면 중상주의는 완전히 낡은 사상일까? 이제 국가의 부의 척도가 금, 은이라고는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콜베르의 부국 정책은 어디서 참 많이 들어본 소리로 들린다. 바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1960~70년대 경제발전 모델은 콜베르의 정책을 닮은 데가 있다. 물론 이런 모델은 경제가 일정 수준에 이른 지금의 한국에서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국가가 개발 단계에 있을 때 중상주의적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중상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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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