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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3일 법정 스님의 소박한 다비식이 거행됐다. 유언에 따라 사리를 찾지 않고 남은 재는 자연에 뿌렸다. 스님은 ‘무소유의 메아리’가 되어 강원도 오두막의 꽃밭으로 돌아간다. 중앙SUNDAY가 다비식 현장을 찾았다.

대나무 평상에 누운 법정 스님의 법구가 불길 속에서 재로 변하고 있다. 불은 밤새 탔다. 수습된 유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송광사=신인섭 기자
소리 없는 법문이었다.
13일 오전 11시 전남 순천시 송광사 경내에서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열렸다. 스님의 유언대로 울긋불긋한 만장도 없고, 연꽃으로 장식한 관도 없고, 수의도 없고, 조사도 없고, 행장도 없었다. 대신 평소 입던 가사로 동여맨 법구(法軀·스님의 유해)만 대나무 평상 위로 덩그러니 놓였다. 그걸 열 명의 스님이 어깨에 멨다.

오전 10시 운구는 송광사 문수전에서 나왔다. 법구를 멘 운구 행렬은 대웅전 앞뜰에서 부처님께 삼배했다. 출가 본사인 송광사와의 작별이었다. 3만여 명의 신도가 경내를 가득 메웠다. 추모객 중에는 검정옷을 입은 천주교 수녀도 있었다. 법정 스님은 평소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게 나의 종교다. 절대 종교에 얽매이지 마라”고 말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두터운 친분을 나눴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였다.

운구는 송광사의 다비 장소로 2㎞가량 이동했다. 신도들은 “석가모니불”과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그 뒤를 따랐다. 가파른 산길을 600m가량 오르자 다비장이 나타났다. 법정 스님의 법구가 숯을 깐 장작 위에 놓였다. 그 위로 다시 굵다란 장작이 여러 층 올라갔다.

산중에는 침묵이 돌았다. 다들 ‘법정 스님의 마지막’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한 스님이 외쳤다. “스~님! 스~님! 불 들어갑니다~아!” 그러자 산중에 있던 추모객들도 큰소리로 불렀다. “스니~임!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상좌들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설정 스님(수덕사 방장) 등이 함께 불을 붙였다. “확!”하고 불길이 올랐다. 하얀 연기가 훌훌 피어올랐다.

신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오열하며 너나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염했다. 나무도 타고, 하늘도 타고, 추모객들의 마음도 탔다. 그건 소리 없는 법문이었다. “장례식을 하지 마라. 평소 쓰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사리를 찾지 마라. 재는 강원도 오두막의 꽃밭에 뿌려라.”

의문이 올라왔다. 법정 스님이 남긴 사리는 뭘까. 마지막 가는 길에 남긴 이 울림의 알갱이는 대체 뭘까. 법정 스님은 생전에 법문에서 “스님들을 화장하면 사리가 나왔다고 요란을 떤다. 사리가 나온 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사리’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이다. ‘타고 남은 유골’이란 뜻이다. 법정 스님은 되레 물었다. “불교에서 화장을 하는 이유가 뭔가? 그건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본래 한 물건도 없기 때문이다.” 큰스님들이 입적할 때마다 재를 뒤져 “사리가 많네, 적네”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화장’에 담긴 불교적 메시지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손에 잡히는 사리란 상(相)을 잡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진짜 사리’를 찾으란 메시지였다.

법정 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진짜 사리가 뭔가?”라는 화두를 던진 셈이었다. 입적 전날 밤 스님은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의 소박하디 소박한 다비식은 산중을 메운 추모객들에게 ‘화두의 울림’이자 ‘참회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송나라 조원(祖元) 선사의 임종게를 읊은 적이 있다. ‘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다 헛것/실상을 찾는다면 눈에 든 티끌/내 사리 천지를 뒤덮었으니/식은 재는 아예 뒤지지 말라.’

법정 스님은 따로 임종게(스님이 열반 직전에 남기는 게송)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니 “장례식을 하지 마라. 사리를 찾지 마라. 재는 오두막의 꽃밭에 뿌려라”가 스님의 임종게가 아닐는지. 결국 ‘가짐의 길’을 통해선 하늘을 덮지 못한다. ‘소유의 길’을 통해선 땅을 덮지 못한다. ‘무소유의 길’을 통할 때만 나의 사리가 천지를 덮는 법이다. 법정 스님은 평생 그걸 설파했고,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그 길을 좇았다.
법정 스님 법구에 불길이 타오를 때 상좌인 덕현(길상사 주지) 스님이 말했다. “이 무상한 불길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법정 스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화·중·생·연!(火中生蓮·불길 가운데 연꽃이 피어난다)”

다비의 불길은 24시간 꼬박 탄다. 14일 오전 10시에야 남은 재를 수습하는 습골(拾骨)을 한다. 법정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은 “스님께서 남기신 유지를 그대로 따른다. 사리를 찾지 않는다. 남은 재는 자연에 뿌릴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이제 ‘무소유의 메아리’가 되어 강원도 오두막의 꽃밭으로 돌아간다. 맑고, 또 향기롭게.

순천=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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