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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엔 왕실 전유물, 금보다 비싼 '만병통치약'

세상의 많은 맛 중 인생에 중요한 건 두 가지다. 단맛 아니면 쓴맛. 단맛은 성공이요 희열이고, 쓴맛은 좌절과 실패를 상징한다. 단맛에 대한 갈구가 인간의 본성처럼 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고소한 맛, 매운맛, 쓴맛, 짠맛…. 이런 맛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불쾌감을 준다. 하지만 단맛은 다르다. 농도와 관계없이 쾌감을 준다. 사람의 단맛에 대한 호감은 본능적이다. 갓난아기도 단맛에 강한 호감을 표시할 정도다. 이유는 명확지 않다. 원시시대부터 단맛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신호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포유동물의 젖이 달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단맛의 정점에 있는 물질, 바로 설탕이다. 설탕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참을 수 없는 달콤함의 이면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숨어있다. 설탕의 달콤함과 순백의 아름다움은 흑인 노예의 땀과 피로 만들어진 결정체이기도 했다.설탕의 역사는 1만 년가량 된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기원전 8000년 서태평양 뉴기니에서 처음 재배됐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설탕은 왕실이나 귀족만 이용하는 의약품이자 향신료였다. 당시 설탕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14~15세기 유럽에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했을 때 유럽인은 설탕이 페스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12세기 그리스도교에서 정한 단식 기간에 설탕을 먹는 것이 율법 위반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졌다. 『신학대전』을 쓴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소화 촉진 등을 위한 약품이므로 이것을 먹는다고 단식을 어겼다고 볼 수는 없다.”설탕이 인간의 고통을 먹고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 아프리카 흑인 노예와 식민지의 광활한 땅을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다. 유럽인은 ‘삼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삼각무역의 중심엔 설탕이 있었다. 유럽인은 면직물ㆍ총기ㆍ유리구슬 등을 배에 싣고 아프리카로 가 흑인 노예를 사들였다.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으로 이동해 노예를 팔고 설탕ㆍ담배ㆍ면화 등을 샀다. 수많은 흑인 노예가 신대륙으로 끌려 간 큰 이유 중 하나가 설탕이다. 사탕수수 재배에는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탕수수 줄기를 심고 수확하는 것을 직접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한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수상이었던 에릭 윌리엄스는 “사탕수수가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설탕이 지구상 인종의 거주지마저 바꿔 놓은 셈이다.

지금도 상흔은 남아 있다. 노예제도는 비록 사라졌지만 일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 착취는 여전하다. 명배우인 고(故) 폴 뉴먼이 내레이션을 한 다큐멘터리 영화 ‘설탕의 가격(The Price of Sugar, 2007)’에 따르면 도미니카공화국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티 노동자는 일주일 내내 매일 14시간씩 일한다. 그렇게 일하고 이들이 받는 일당은 고작 1달러도 되지 않는다.

흑인 노예의 땀과 피로 생산된 설탕은 유럽 각지로 퍼지기 시작했다. 금보다 비쌌던 가격도 급락했다.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18세기로 접어들자 설탕은 더 이상 약이나 향신료로 쓰이지 않게 됐다. 본래의 의미, 식품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그랬던 설탕이 요즘 들어 다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약품과 입욕제품, 심지어 자동차 연료와 전력 재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설탕은 한국 제조업의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은 1953년 8월 1일 제일제당을 설립했다. 제일제당은 해방 후 남한에 건설된 최초의 현대적 대규모 생산시설이었다. 그가 첫 번째 제조업으로 설탕을 선택한 이유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장 빨리 설립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한에는 설탕 생산시설이 전무했다. 이 때문에 설탕의 국내 가격은 국제 가격의 3배나 됐다. 제일제당은 53년 11월 5일 시제품을 처음 생산했다. 이날 생산된 양이 6300㎏. 제일제당의 설립으로 53년 남한의 설탕 수입 의존도는 100%였으나 54년 51%, 56년에는 불과 7%로 뚝 떨어졌다.

29년간 잠잠하던 설탕 값이 요즘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 설탕(원당)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다 최근 급등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지난해 초 원당 가격은 파운드(453g)당 14~15센트에 거래됐지만 1월 29일에는 28.60센트를 기록했다. 29년 만의 최고치다. 2월 1일엔 장중 30.40센트를 찍으며 심리적 저항선(30센트)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9일에는 파운드당 20.32센트를 기록했다. 이는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설탕 값이 이처럼 냉·온탕을 오간 데는 기상이변과 각국의 보조금 축소, 투기 세력의 가담이 이유다. 인간은 설탕이 부족해도, 많아도 심리적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적어도 탈, 많아도 탈인 설탕, 끝없이 달콤함만 맛보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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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