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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구름’ 이후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일본 국민작가다. 그는 자기 나라의 역사적 성취와 영광에 심취했다. 그것을 그의 문학적 감수성에 녹였다. 그리고 일본의 혼과 자부심을 재생산했다.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도 그의 그런 작품이다. NHK는 그 소설을 13부작 대하드라마로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다섯 편을 방영했다.

‘언덕 위의 구름’은 근대 일본의 국민적 꿈과 활기를 상징한다. 그는 1996년 숨졌다(73세). 그 무렵부터 깊어진 일본의 불황은 계속되고 있다. 시바는 역사 전개의 영욕과 곡절에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일본의 좌절은 상상하지 못했다. 도요타자동차 리콜, 밴쿠버 겨울올림픽 부진, 글로벌 기업의 열도 탈출은 일본의 침체를 상징한다. 일본은 미래의 불안감으로 긴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 상당수가 꿈과 희망을 상실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비관에는 일본식 엄살도 느껴진다.

‘언덕 위의 구름’의 주요 배경은 일본과 러시아 전쟁(1904~1905)이다. 시바에게는 조국방위 전쟁이다. 그는 한반도 침략전쟁이란 사실을 거부한다. 일본제국주의 역사관이 깔려 있다. 시바는 소설에서 새 인물을 발굴하고 영웅을 배출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이겼다. 그 막은 포츠머스(미국 뉴햄프셔주)에서 내려졌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종료 협상 장소다.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조선을 본격 강탈한다. 협상 주인공은 당시 일본 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다.

시바는 ‘언덕 위의 구름’ 같은 포츠머스에 갔다. 미국 동부의 작고 조용한 항구다. 그의 기행문 ‘아메리카 소묘’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곳 도서관에 러시아 대표와 협상 때 고무라 외상이 앉았던 의자가 보존돼 있었다. 고무라는 왜소했다(키 155㎝). 의자에 앉아 봤다. 고무라의 주도면밀, 강인함 때문에 왜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가사의했다.”

시바의 현장 방문 17년쯤 뒤에 나도 포츠머스에 갔다. 러일전쟁을 추적하면서다. 그 의자는 그대로 있었다. 앉아 보았다. 그리고 시바의 영웅관을 떠올렸다. “일본의 최고 인기 작가는 왜 고무라에 그처럼 매료됐을까”-. 그것은 도전과 용기의 인간상에 대한 본능적인 흥미와 존경심일 것이다.

고무라 외교는 일본의 운명을 바꿨다. 그는 영일동맹의 설계자다. 그 무렵 원로 실세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러일 협상파였다. 이토는 메이지 유신의 원훈이다. 영일동맹은 이토의 반대를 이겨낸 도발적 외교 진로였다. 그 동맹은 일본의 승리를 보장했다.

일본의 활력은 떨어져있다. 전 도교대 총장인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는 이렇게 진단한다. “언덕 위의 흰 구름을 보고 거기까지 올라가려는 것이 개발도상국이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 흰 구름 가운데로 들어가면 안개다. 선진국은 흔히 안개 가운데서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요미우리 1월 5일자)

일본은 60년대 말부터 세계 2위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국가의 새로운 진로와 의제 설정에 아직도 미숙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웃 나라 침략에 대한 사과·반성도 어설프다. 예일대 석좌교수 폴 케네디는 자신의 컨셉트인 ‘강대국의 흥망’으로 분석한다.
(중앙일보 3월 4일자) “일본의 쇠락은 리더십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지금 일본은 굴욕을 당하는 상태다. 그것은 결단력 있는 지도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처 총리 같은 지도자가 없다. 과거 총리 중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예외였다.” 지난해 일본은 정권 교체를 했다. 하토야마(鳩山) 정권은 아직 변화를 힘차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의 요체는 용기와 비전이다. 한국 국민은 대체로 그런 대통령을 뽑았다. 우리 국민의 활력과 긍정적 시대의식은 지도력을 단련시켰다. 사회 일각의 역사 퇴행 움직임도 차단해왔다. 국가 진운은 리더십이 결판낸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그것을 실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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