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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말라 하셨지만...그래도 소유하고 싶은 법정 스님의 문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인데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춘삼월, 폭설이 내려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길상사 마당에 100여 번의 타종이 울려 퍼졌다. 김광규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들이 구구구 울음소리를 내고, 쾌유를 빌며 엎드려 기도하던 신도들은 마침내 울분을 쏟아내었다. ‘무소유’란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탐하지 않는 것. 그 유명한 무소유의 화두(話頭)를 대중에게 심어주었던 이 땅의 선승이며 문필가인 법정 스님이 폐암으로 지난 11일 열반을 하셨다. 그동안 스님은 산문집과 잠언집, 불교서 등 많은 저서를 펴내 이 땅에서 진정한 참사람의 모습이 무엇이며 수행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남긴 『무소유』는 1976년 출간된 이래, 현재까지 무려 300만 부가 팔려나갔을 정도로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다. 34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만큼 오래 읽히는 책도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대적할 만한 책은 언어 철학을 다룬 이규호 전 장관이 쓴 『말의 힘』정도다. 그만큼 스님은 선승으로서나 저서가로서 감히 넘보지 못할 독보적인 존재였다. 종교의 벽이 두꺼운 우리나라에서 타 종교인들에게조차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것은 바로 스님이 가진 인간존재의 본연의 자세를 그린 무소유의 정신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조차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스님은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 라는 말씀을 무소유에 담았었다.

법정 스님은 출가할 무렵인 60년도 초에 신문과 잡지에 틈틈이 글을 발표할 정도로 이미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하지만 유신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올곧지 못한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은 오히려 조용히 침묵하며 대중의 가슴을 서서히 울려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으로 거처를 옮겨 집필을 하기 시작했다. 『무소유』도 이곳 불일암에서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무소유』가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출간 당시가 아니라 한창 대한민국이 고도성장을 이룩하던 96년도 이후였다. 97년 외환위기를 맞고 절망에 빠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새삼, 스님의 『무소유』를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당시 평론가들은 ‘정갈한 문장 속 극도로 절제된 언어에 은밀히 녹아든 현실비판의 목소리는 비록 일상사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나 웅변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종교의 담을 괘념치 않고 그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고로 다른 종교 신자들로부터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라고 했다.

이 책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사실 시대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점도 없지 않다. 당시만 해도 한국사회는 성장기에 있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정치적 사회적 병폐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시면서 더욱 많이 읽혀졌던 것이다.

불일암으로 거처를 옮기고 스님은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스님의 문장은 절대로 웅장하지 않고 고요하며 결이 곧아 수행자로서의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흔적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읽는 이조차 자신의 고독과 외로움의 상처를 대신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님이 쓰신 책들이 시골 촌부에서부터 노인·학자·정치인·교수·젊은이들에게 널리 읽혀져 왔던 이유다. 이것이 바로 법정 스님의 문장의 힘이다.

그럼,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침묵과 고요’다. 산사의 적막 속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아온 스님에게 있어 글이란 곧 한 편의 시(詩)와 같다. 바꾸어 말하면 시란 무엇인가. 말씀 언(言)자에 절 사(寺)자가 합쳐진 글이다. 스님에게 곧 글은 한편의 시와 같은 감동을 던져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스님은 단 한 줄의 글을 써도 치열하게 갈고 닦아 한편의 시처럼 곱고, 단청처럼 아름다우나 결코 연약하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큰 공감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진면목(眞面目)은 사실 다른 책에서 더 드러난다. 법정 하면 대개 『무소유』를 먼저 떠올리지만 83년에 출간한 『산방한담』『버리고 떠나기』『홀로 사는 즐거움』 도 매우 뛰어난 산문집이다. 제목에서부터 절절한 고독과 침묵이 배어 나온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산방한담』 중)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홀로 사는 즐거움』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버리고 떠나기』 중)

이 책들은 법정 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서 홀로 지내며 정갈하게 수행자로서의 고독을 느끼며 쓴 책들로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 후에 나온 법문집『일기일회(一期一會)』,『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잠언집『산에는 꽃이 피네』,『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봄 여름 가을 겨울』등은 스님과 절친한 류시화 시인과 상좌 스님들이 묶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 속에서도 스님의 진면목을 훑어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스님이 육필로 쓴 최후의 책은 고희를 앞두고 쓴『오두막 편지』다. 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에 암자를 짓고 20년간을 사시다가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살면서 틈틈이 쓰신 이 책은 진정한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던져 주었다. 스님이 불혹을 갓 넘은 나이에 쓴 『무소유』가 스님이 가진 삶에 대한 정신적인 세계에 의해 쓰여졌다면 이 『오두막 편지』는 스님이 고희에 가까운 나이에 무소유의 실천적 삶을 기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더 깊다고 하겠다.

상좌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오지, 자신의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몇 평 오두막에서 손수 마련한 땔감으로 불을 지피고 홀로 차를 달여 마시면서 세상에 보낸 50편의 절절한 산문이 바로『오두막 편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님께서 불혹의 나이에 세상을 향해 무소유를 주창했듯, 고희가 가까운 연세에 무소유에 대한 실천적 삶을 마지막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속에는 수행자의 삶이 서정적인 문체와 함께 절절하고도 고요하게 녹아 있으며 세상의 올곧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사랑이 스며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수행하는 사람이 무소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철저히 고독하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水道)를 끌어들이지 말아라.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가고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마실 물은 바로 지척에 있는 암자의 샘에서 물병으로 길어다 쓰면 될 것이다. 그 집에는 차(茶) 외에는 마실 것도 두지 말아라.’ 심지어 스님은 ‘수행자의 집에는 여성들의 출입을 금해야 하고 거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밤 열 시 이전에는 눕지 마라’ 등의 경책(警策)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불교 경전에서 한 수행자가 경전을 갉아먹는 쥐를 없애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고 그 고양이를 먹일 우유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고 그 소를 먹이기 위해 부인을 얻어 결국 수행자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고 쓰여 있듯이 그런 탐욕의 근거를 없애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셨던 것이다. 이는 극한의 절제에 다름 아니다.

당시 스님께서 남긴 말씀은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명구(名句)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스님의 무소유는 ‘단순히 가지지 말라’가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탐진치 삼독(三毒)을 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무소유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화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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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