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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왼손잡이 기타맨, 그가 펼친 자줏빛 세상

1967년 8월, 영국에서 날아든 앨범 하나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첫 앨범 ‘Are You Experienced?’(영국판, 미국판의 재킷 디자인이 전혀 다르고 수록 곡도 약간 다르다). 말 그대로 ‘경험했나요’ 딱 그거다. 듣도 보도 못한 블루스 록, 로큰롤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몽환적인 사운드 페인팅이라니. ‘Purple Haze’ ‘Third Stone From the Sun’ ‘The Wind Cries Mary’ 등등 자줏빛 자욱한 진경, 맞다. 지글지글 울어대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는 그의 붓이었고, 분노에 찬 절규와 관능미 물씬한 읊조림은 물감이었으며, 마셜 앰프는 캔버스였다. 미추를 뛰어넘는 귀곡성의 피드백 노이즈 사운드(기타와 앰프 사이에서 웅~웅거리는 굉음)에 젖다 보면 ‘야드버즈’ 시절 제프 벡의 66년 피드백 명곡 ‘Lost Woman’은 차라리 순진하다.

기타를 등 뒤로 돌려 튕기거나 이로 뜯어 연주하는가 하면 기타에 기름을 붓고 성냥을 긋는 퍼포먼스 등 쇼맨십 또한 당시로선 기절초풍할 만했겠다. 기타를 내리쳐 부숴 버리는 화끈한 야성미까지(사실 이건 ‘더 후’의 피트 타운셴드가 선배님이시다). 시애틀이 낳은 기타 레전드 지미 헨드릭스. 그가 이끄는 밴드, 익스피리언스의 첫 미국 공연인 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의 명장면을 잊을 수 없다. 비유컨대 40년대 재즈에서 비밥 시대를 열어젖힌 찰리 파커가 알토 색소폰을 갖고 놀았듯,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록기타를 ‘아작’(?) 냈다고 할까.

같은 해 ‘If 6 Was 9’(데니스 호퍼가 연출, 주연한 로드 무비로 할리데이비드슨에 올라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히피들을 그린 69년 작 ‘이지 라이더’에도 수록)과 ‘Little Wing’이 담긴 2집 ‘Axis: Bold As Love’에 이어 이듬해 3집 더블 앨범 ‘Electric Ladyland’가 나온다. 부트렉까지 꼽아 수십 종에 달하는 그의 음반이라면 다 근사하지만, 화룡점정은 바로 이거다. 미국판 재킷과 달리 영국 오리지널 더블 LP판에서만 볼 수 있는 일명 ‘누드 여인들 커버’(사진)도 훌륭하다. 그 우아한 퇴폐미라니.

킬러 트랙을 딱 하나만 꼽자면 그가 가장 존경했다던 밥 딜런의 원곡을 커버한 ‘All Along the Watchtower’다. 찰랑찰랑 12줄 기타 음이 싱그러운 미국 포크록의 큰별 ‘버즈’(Byrds)의 ‘Mr. Tambourine Man’(65년)과 함께, 리메이크된 딜런의 노래 중 단연 으뜸이다. 찰진 리듬을 타고 좌우 스피커 사이에서 와우와~거리며 붕붕 날아다니는 와와 페달(wah-wah pedal) 기타의 울림, 그 경쾌한 둔중함, 뭉뚝한 날카로움을 어쩌랴. ‘Crosstown Traffic’은 또 어떻고. 15분짜리 트랙을 5분대로 줄여 거듭 연주한 끝 곡 ‘Voodoo Child (Slight Return)’. 궁극의 사이키델릭 블루스록 넘버가 아닐까 싶다. ‘트래픽’ ‘블라인드 페이스’의 보석, 스티브 윈우드가 오르간 연주로 가세해 중독성이 더하다.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인 ‘The Star Spangled Banner’도 과연 그답게 비틀었다. 69년 8월,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 총성과 네이팜탄의 굉음을 짓이겨 처절하게 난도질 친 기타 선율은 베트남전의 광기 아래 스러져간 젊음에 대한 애도와 기성세대에 대한 야유로 타올랐다.

그의 ‘스완송’ 격인 마지막 정규 앨범이자 첫 라이브 음반 ‘Band of Gypsys’는 70년 벽두에 나오는데 이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연이다. 예전에 이미 손발을 맞춰본 적 있는 오랜 미국인 친구들로 팀을 새로 짜서인지 펑키(funky) 리듬이 후끈하다. 신 내린 듯한 그의 핑거링이 먼저 불을 뿜으면 버디 마일스가 뒤질세라 난사하듯 드러밍으로 지원 사격하는 12분짜리 핫트랙 ‘Machine Gun’, 꼭 기억할 만하다.

말머리를 잠깐 돌려보자. 지미 헨드릭스를 이렇듯 신화로 만든 일등 공신은 채스 챈들러 아닐까. ‘House of the Rising Sun’(해 뜨는 집) 노래로 7080한테도 꽤 친숙한 영국의 블루스 록밴드 ‘애니멀스’의 베이스 주자 아니시던가. 왼손잡이 무명 기타맨이던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본명)의 천재성을, 뉴욕의 클럽에서 단박에 알아챈 눈 밝은 사람이다. 헨드릭스의 내공은 리틀 리처드, 샘 쿡 같은 쟁쟁한 뮤지션의 백밴드에서 다져진 터다.

챈들러의 손에 이끌려 66년 대서양을 건너간 스물네 살 흑인 청년. 그곳 런던에서 헨드릭스는 무얼 보았을까. 60년대 블루스 리바이벌을 이끈 쪽은 미국 흑인이 아니다. 영국의 백인이었다. 말랑말랑해진 미국 블루스에 비해 한결 순수하고 활기찬 그곳은 기회의 땅이었으리라. 그해 노엘 레딩(베이스), 미치 미첼(드럼)과 뭉쳐 트리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결성한다. 이로써 고수 즐비한 록음악의 강호에서 먼저 선보인 에릭 클랩턴의 수퍼 트리오 ‘크림’과 화려한 3대3 맞짱이 시작된 거다. 그즈음 일화 한 토막. 레딩은 원래 기타 치던 친구였는데 헨드릭스 솜씨를 보곤 아이쿠 형님, 하며 베이스로 얼른 바꿨다나.

영원할 것만 같던 지미 헨드릭스의 시대도 종언을 고한다. 행복의 나라로 데려다 주리라 믿었던 약물, 그건 파멸을 향한 불꽃이었다. 헨드릭스 역시 유혹을 피해가지 못했다. LA 출신 ‘도어스’의 짐 모리슨, 텍사스에서 온 여걸 재니스 조플린이 그랬듯. 사이키델릭 시대의 3J로 불린 이들 중 가장 먼저 70년 9월 18일 스물여덟에 세상을 떴다. 그 무렵엔 너무 쇠약해진 나머지 공연 도중 무대를 그냥 떠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3월 2일자에 헨드릭스의 40주기 추모 기사를 실었다. 지난 9일에는 헨드릭스 사후 쏟아진 무수한 편집 앨범 여기저기에 실렸던 곡 중 묻혀있던 69년 녹음 버전만을 골라 그러모은 음반 ‘Valleys of Neptune’이 나왔다. 올 한 해 헨드릭스를 위한 헌정 공연은 쉼 없이 이어진다.

록기타 역사는 지미 헨드릭스 이전과 지미 헨드릭스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록의 르네상스 60년대를 관통하며 선연한 빛을 뿌린 그의 생애에서 기타는 곧 육체였고 육체는 곧 기타였다. ‘올 댓 사이키델리아’로 살다 간 그를 처음 듣는 이라면 당최 정신 사납다고, 또 어떤 이는 40년도 더 된 원초적 사운드가 군내 나는 구닥다리라고 진저리 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헨드릭스는 “심장에 더 가까우니까 악수는 왼손으로 합시다”라던 사나이다. 진솔한 록의 원형질이 여기 있다.

박진열 기자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하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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