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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여배우 선정된 샌드라 불럭 ‘쿨’하게 수상 소감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이맘때가 되면 할리우드 스타들은 기대 반 두려움 반에 젖는다. ‘기대’는 아카데미상에 대한 것이고, ‘두려움’은 골든 라즈베리상(이하 래지상)에 대한 것이다. 올해로 서른 번째를 맞는 래지상은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에 개최돼 그해 최악의 영화와 배우를 뽑는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다수 출연한 여배우 샌드라 불럭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래지상 최악의 여배우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참으로 독특한 경험을 했다. 물론 수상의 근거가 된 영화는 달랐다. 아카데미상은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 대한 것이었고 래지상은 영화 ‘올 어바웃 스티브’에 대한 것이었다.

래지상은 1981년 존 윌리엄스라는, 한 장난기 많은 미국 카피라이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는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면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을 함께 먹으며 시상식을 시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미 삼아 친구들과 그해 최악의 영화를 뽑아 보았고 자기들끼리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며 키득댔다. 이날의 ‘내 맘대로 시상식’은 어쩌다 보니 한 지역 신문에 소개되었고,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미국 주요 매체에 매년 수상 결과가 보도될 정도로 나름의 ‘권위’도 생겼다. 대충 선정하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일부러 35달러(한화 약 4만원)씩이나 지불하고 회원으로 가입한 전 세계 20여 개국 700여 명의 회원들이 후보작을 고르고 수상작을 선정한다.

배우들이 이 상에 대해 불쾌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서른 번이나 래지상 최악의 배우 후보에 올랐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존 윌리엄스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왜 나만 못살게 구느냐”는 항의 메시지를 자동응답기에 남겼다. 한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기습적으로 트로피를 건네받은 벤 애플렉은 그 자리에서 트로피를 부수기도 했다.

그럼에도 쿨하게 시상식장에 나타나 상을 받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2005년 최악의 여배우상 수상자로 선정된 할리 베리가 그렇다. 그녀는 시상식장에 직접 나와 상을 받은 뒤 아카데미상을 받고 ‘오바스럽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여배우의 모습을 패러디해 관중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샌드라 불럭의 재치 있는 수상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샌드라 불럭은 ‘올 어바웃 스티브’ DVD 수백 개가 담긴 수레를 가지고 나와 방청객에게 나눠주며 “이 영화를 직접 보고도 최악의 영화라 생각한다면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나와 래지상을 반납하겠다”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래지상 수상에 대해 “어쨌든 영화가 그 무엇으로든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등 진정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샌드라 불럭이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모습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퍼져 나갔고 이후 그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래지상 때문에 상처받는 배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가 던진 작은 돌멩이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는 것만큼 모양 빠지는 일도 없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라”는 어느 코미디 프로의 표어처럼, 할리우드 배우들이여, 장난은 장난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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