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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 스타인버그, 우즈 위기관리 실패로 회사 휘청

타이거 우즈(왼쪽)와 그의 에이전트 마크 스타인버그. IMG의 핵심인 스타인버그는 우즈·소렌스탐 등 골프 스타들의 비즈니스를 도맡아 골프계 영향력 3위의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우즈의 이중생활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AP=본사특약]
1940년대 시카고의 골목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날카로운 브레이크 파열음을 내며 멈춰섰다. 한 소년이 이 차에 치여 튕겨 나갔다. 소년의 이름은 마크 매코맥. 역설적이지만 이 교통사고로 인해 골프와 스포츠는 고속도로를 달리게 됐다.

매코맥은 머리를 다치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회복했지만 의사는 신체 접촉이 있는 스포츠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던 그에겐 교통사고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매코맥은 대학 시절까지 골프선수로 활약했으며 아마추어로 US오픈에 나가기도 했다.
1959년 클리블랜드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매코맥은 골프대회에 구경을 갔다가 아널드 파머를 만났다. 대학 시절부터 파머와 친분이 있던 그는 개인 비즈니스 매니저를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TV시대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의 중요성을 예지했기 때문이다.

파머는 손을 내밀어 매코맥과 악수를 했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시작이었다.
매코맥과 파머는 아무런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믿었고 존중했다. 파머는 『골퍼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마크는 내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도 마크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고 적었다. 매코맥은 IMG(International Management Group)라는 회사를 차리고 개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와 계약했다. 1960년대 IMG라는 우산 속에서 세 골퍼는 황금의 트리오가 됐다. 그들은 매코맥의 창의력 덕에 대스타가 되어 스폰서를 얻고 광고 모델이 됐으며 초청료를 받기 시작했다. 선수뿐만이 아니라 골프라는 스포츠도 매코맥이 키웠다. 그는 월드 매치플레이 챔피언십과 스킨스 게임을 만들었다. 골프장에 스폰서 VIP를 위한 접대 텐트와 세계랭킹을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마크 매코맥
그는 테니스 코트도 엘도라도로 만들었다. 그의 호주오픈 복식 2회 우승자인 첫 부인 베시 네이글슨을 통해 그는 테니스 스타들과 친분을 쌓아갔다. 비에른 보리, 피트 샘프러스, 크리스 에버트, 로저 페더러 등 테니스 수퍼스타들은 거의 IMG와 계약했다. 매코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골프뿐 아니라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갔다.
그는 인간적이었으며 혜안이 있었고 창의적이었으며 협상에 능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서 21주간 1위를 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 등 여러 베스트셀러를 냈다.

그러나 IMG가 거대한 스포츠 공룡으로 커가면서 이런저런 문제도 나왔다. 80년대부터 골프계에서는 ‘IMG에 당했다(being img’d)’는 말이 유행했다. 뛰어난 성적을 낸 선수가 IMG와 계약하면 이듬해 성적이 나빠지는 현상이다. 전 세계에 걸쳐 촉수가 뻗쳐 있는 IMG 소속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고 지명도만 높아진다면 언제든지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너무 많이 활동하다가 다치거나 과로로 성적이 나빠졌다.

물론 IMG는 ‘being img’d’라는 말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 IMG는 선수들에게 더 뛰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인 선수가 싫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다. 또한 현명한 에이전트는 황금알을 낫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다.

그러나 월급쟁이인 에이전트들은 오너인 매코맥과 달리 장기적으로 선수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실적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에이전트들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벌 수 있을 때 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선 스포츠 선수가 IMG와 계약한 것만으로도 뉴스가 되던 때가 있다. 최고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가 계약할 정도로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로 선수가 어려울 때 아주 매몰찬 곳이 IMG이기도 하다. 거대 제국 IMG는 패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현재 IMG의 핵심 인물은 마크 스타인버그다. IMG의 상징인 골프 전반을 그가 관리한다. 그는 이름이 마크인 점 외에도 창업자인 매코맥과 공통점이 많다.

시카고 인근에서 태어나 농구를 했다. 일리노이 대학에 체육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들어가 농구 선수가 됐다. 89년 ‘3월의 광란’으로 알려진 64강 토너먼트에서 4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는 92년 인턴으로 IMG와의 인연을 시작했고, 94년 당시로서는 무명이었던 안니카 소렌스탐을 영입했다. 95년 소렌스탐이 US여자오픈 우승으로 골프 여제의 길에 접어들면서 스타인버그의 명성도 함께 올라갔다.

그는 98년 골프 황제인 타이거 우즈의 에이전트까지 맡게 됐다. 우즈가 IMG에 담당 에이전트 휴스 노턴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해 대타로 나선 것이다. 노턴은 타이틀리스트와 60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해 줬지만 미디어와 이런저런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우즈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미디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우즈-스타인버그 팀은 골프시장을 한 단계 키웠다고 평가받는다. 스타인버그는 유대인 상사 덕에 고속승진을 했다는 비난도 받지만 우즈와 12년째 함께 지내고 있다. 스타인버그는 “고객에겐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스맨’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곤 했다. 둘은 매코맥과 파머처럼 잘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우즈의 교통사고 이후 스타인버그의 실력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사고 대처가 매우 아마추어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일찌감치 얼굴을 드러내고 경찰 조사를 받았다면 단순한 교통사고에 그쳤을 일이 우즈의 잠적으로 의문이 증폭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스타인버그가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보낸 ‘이 아이에게 휴식을 주기를 바랍니다(let’s please give the kid a break)’라는 내용의 e-메일이 공개돼 웃음거리가 됐다. 기자들은 그가 34세의 골프 황제를 두고 ‘kid’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두고 씹었다. 조용히 보낸 부탁 메일이 공개된 것도 문제다. 스타인버그는 전임자인 노턴과 달리 미디어와 인간적인 관계가 거의 없었다. 인터뷰 요청을 번번이 거절당했던 기자들은 그가 아쉬울 때 보낸 메일을 공개해버렸다.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우즈는 4월 초에 열리는 마스터스에는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비공식 친선대회(3월 22일, 타비스톡컵)와 자신이 유난히 좋은 성적을 냈던 대회(3월 25일, 아널드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참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가 성공적으로 복귀하려면 코스에서는 자신에게 야유를 퍼부을 안티팬들, 기자회견장에서는 적대적이 된 언론인들과 상대해야 한다. 모두 쉽지 않다. 우즈는 기자들 앞에 앉아서 불륜에 대해서는 물론, 지난해 무릎 수술 재활과정에서 자신을 치료한 앤서니 갈리아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갈리아는 금지약물을 사용한 혐의로 캐나다 경찰에 구속되어 있다.

우즈 캠프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를 고용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미디어의 공격을 피하는 전문 PR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마크 맥과이어를 상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우즈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스타인버그의 가장 큰 문제는 우즈의 이중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조치도 취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고객과 신뢰·우정의 관계가 아니라 전형적인 예스맨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즈 문제 이외에도 IMG는 난관에 부닥친 상태다. 최경주·양용은·박세리 등 IMG 소속의 한국 빅스타들은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

2003년 창업자가 타계한 이후 창의력과 혜안, 인간적인 신뢰 같은 IMG의 정신이 퇴색했다는 지적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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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