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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57>이문열의 등단 전후

소설 ‘영웅시대’의 작품 현장인 경북 영양군 생가를 찾은 소설가 이문열의 1984년 모습.
이문열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새하곡’이 당선하고, 뒤이어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했다. 그의 나이 만 서른한 살 때였다. 등단 이후의 성장속도가 누구보다 빨랐던 점을 감안하면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그의 등단은 많이 늦은 셈이었다. 그보다 두 해 전인 7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가작 입선하고 그 인연으로 그 신문의 편집기자로 채용되지만 문단에서는 그것을 데뷔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2년 동안 이문열은 수많은 작품을 써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투고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의 작품을 뽑아주지 않았다.
78년 말 이문열은 ‘새하곡’을 동아일보에 투고한 뒤,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판단하고 그동안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에 응모했던 작품들을 모아 ‘낙선작품집’의 자비출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데뷔작이 되는 ‘새하곡’과 ‘사람의 아들’을 비롯해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맹춘중하’ 등 모두 12편이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당선으로 ‘낙선작품집’의 출판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문열은 데뷔 첫해인 79년에만 중편 4편과 단편 5편 등 모두 9편을 발표하는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문열이 처음 소설을 쓴 것은 서울대 사대에 재학 중이던 60년대 후반이었다. 후에 시인이 되는 유자효·장영수, 그리고 평론가로 활동하게 되는 김재홍 등과 함께 사대의 문학 서클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69년 한 해에만 장편 한 편과 단편 10여 편을 썼다니 그의 소설가적 재능은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70년 대학을 자퇴하고 소설가의 꿈을 일단 뒤로 미룬 채 대구로 귀향한다. 그때부터 약 7년 동안 원고지를 마주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 까닭을 이문열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확신이 서지 않았고, 현실적인 돈벌이가 더 급했다’면서 그동안 결혼도 하고 군복무도 마쳤다는 대답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것이 29세 때였다. 게다가 처자식 딸린 무직의 가장이었다. 취직을 하려 했으나 졸업장이 없어 시험조차 치를 수가 없었다. 졸업장이 필요 없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려 학원에 등록했다가 얼마 뒤 아예 학원 강사로 들어앉게 되었다. 입시학원 강사로 발탁돼 수학을 제외한 전 과목을 강의해 ‘전천후 강사’로 불렸다. 강사 생활이 시들해갈 즈음 문득 ‘문학은 내 운명’이라는 어떤 계시가 휘몰아쳐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열예닐곱 살부터 시작된 폭주 습관이 다시 도졌다. 소설을 쓰기 위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기 위해 소설을 썼다.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기자도 그의 데뷔 직후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간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다. 기자보다 예닐곱 살 아래이기도 하지만 이문열의 주량은 가늠을 못할 정도였고, 술을 시작했다 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미였다. 서울에 올라오기만 하면 기자를 찾아와 술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데뷔 이듬해 ‘사람의 아들’을 무대에 올린 연극연출가 윤호진도 이따금 합세했다. 이문열과 동갑인 윤호진은 주량도 이문열과 막상막하였다. 꼭 기자의 탓만은 아닌데도 술 때문에 이문열의 아내에게서 원망도 많이 들었고, 서울에 올라가더라도 정 아무개는 만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문열에 따르면 그의 ‘술 역사’는 6살 때부터 시작됐다. 할머니 장례식 때 멋모르고 주는 대로 받아 마신 뒤 하루 종일 곯아떨어진 것이 음주의 첫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 뒤 열대여섯의 초동 시절 동네 젊은이들을 따라 나무하러 산에 갈 때마다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술맛에 익숙해져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열일곱 때부터라고 하니 그는 선천적인 모주꾼인 셈이다. 20대 초·중반 무렵에는 고질적인 불면증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어찌 보면 이문열에게 있어 술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데뷔 이후 3~4년 동안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청탁받은 소설을 쓰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그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늘 술로 풀었다니까.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어느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술을 마시는지, 과감하게 끊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 60대에 접어든 그가 계속 건강을 유지하며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대견하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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