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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가 비밀계좌 마케팅 스위스서 뭉칫돈 몰려

리히텐슈타인 왕실 은행 LGT의 최고경영자 막스 왕자
“독특하고 매력적인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다.”
유럽의 작은 입헌군주국 리히텐슈타인 막시밀리안 니콜라우스 마리아(막스·41) 왕자의 자랑이다. 그는 스위스와 쌍벽을 이루는 조세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 왕실 직영 은행인 LGT의 총수다. 그가 이달 초 영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 부호들이 사는 곳을 섭렵하듯이 돌아다녔다. 관광이나 교유, 쇼핑 때문이 아니었다. 마케팅을 위해서였다. 분위기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는 사활을 걸고 판촉하는 듯했다. 그는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영국 고객이 많지 않다”며 “(스위스나 바하마 등 다른 조세피난처에서) 영국 고객이 많이 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막스 왕자는 리히텐슈타인 왕자 30명 가운데 둘째다. 왕실 재정을 책임지고 있다. 이런 그가 얼굴을 드러내며 조세피난처를 홍보하고 나서기는 처음이다. 무엇이 막스 왕자의 등을 떠밀었을까? 급격한 자금 이탈이다. 2009년 리히텐슈타인 15개 은행의 자산이 22%나 줄었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들의 전체 자산은 1443억 달러(약 180조원)다. 은행들의 평균 순이익은 60% 정도 감소했다. 글로벌 경제의 침체와 조세피난처의 자료를 공개하라는 각국 정부의 압박이 가장 큰 원인이다. 리히텐슈타인이 영국·독일 등과 맺은 금융정보 공유협약도 크게 구실했다.

영국 등과 협상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막스 왕자였다. 2000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 세계 조세피난처들을 상대로 금융정보 공개를 압박했다. 막스 왕자는 대세를 직감했다. 먼저 매를 맞는 전략을 선택했다. 스위스와 바하마 등이 저항하는 사이 리히텐슈타인은 협상했다. 영국 돈세탁 방지 전문가인 스티븐 플래트는 “미국과 독일 등의 체계적인 사냥으로 조세피난처 뿌리가 뽑히고 있는 상황에서 리히텐슈타인이 가장 현실적인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막스 왕자는 구멍(면책조항 등)을 몇 개 확보했다. 그는 “(협상 결과가) 아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밀보호 원칙은 일단 훼손됐다. 왕실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미하헬 왕자는 “막스가 너무 많이 양보했다”며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 무너졌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리히텐슈타인이 비밀계좌 영업을 시작한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다. 전쟁으로 불안해진 부호들이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뭉칫돈을 맡겼다. 리히텐슈타인의 공식 화폐는 스위스 프랑이다. 부호들이 어느 쪽과 거래하든 인플레이션 차이가 없었다.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보다 고객의 비밀을 더 엄격하게 유지했다. 미국 등이 탈세를 돕는 나라라고 비판의 날을 세울 때 리히텐슈타인은 “예금자가 의도적으로 탈세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금융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며 “탈세를 입증하라”고 되받아쳤다.

리히텐슈타인 은행들이 비밀의 철옹성은 아니었다. 독일 연방정보기관이 2008년 730만 달러를 주고 막스 왕자가 경영하는 LGT 직원을 매수한 적이 있다. 그는 은행 전산담당 직원이었다. LGT가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그는 고객 정보를 CD에 담아 독일에 넘겨줬다. 미국 등 12개 나라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

올 들어 막스 왕자는 “리히텐슈타인에 돈을 예치하면 그동안의 탈세가 면책된다”고 주장하며 부호들을 유치하고 있다. 올 1월 1일 이후 발효된 영국 등과의 협약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 은행들에 돈을 맡긴 사람은 범죄와 관련이 없는 한 최근 10년 동안 안 낸 세금의 10%만을 벌금으로 내면 더 이상 처벌받지 않는다. 또 계좌 정보가 대중에 공개돼 수모를 당하는 일도 피할 수 있다. 스위스나 바하마 등에 맡겨 놓은 돈을 리히텐슈타인으로 옮겨도 같은 혜택을 받는다. 궁지에 몰린 리히텐슈타인이 써먹을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재료다.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유럽의 금융전문 월간지인 유러머니는 최근 “부호들이 헤지펀드와 스위스 등의 프라이빗 뱅킹(비밀계좌)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며 “2010년 들어 뭉칫돈이 리히텐슈타인 은행들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호들의 눈에 딱히 미더운 곳이 없어진 요즘 리히텐슈타인이 더 매력적인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리히텐슈타인 자체가 부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알프스산맥 사이에 있는 이 초미니 왕국은 1719년 공작이 다스리는 영지로 출발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기사작위를 받은 귀족의 땅이었다. 147년 뒤인 1866년 영세중립국을 표방하며 독립했다. 현재 통치자는 한스 아담 2세(65)다. 1989년 부왕인 프란시스 조셉 2세한테서 통치권을 물려받았다. 야망이 큰 한스 아담 2세는 경제정책 등에 개입하려다 의회와 충돌하기도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결국 2003년 국민투표를 거쳐 내각 불신임권과 재판관 지명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장남인 알로이스 왕세자에게 일상적인 업무를 맡겨 놓고 2선으로 물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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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