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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뱅킹이 강한 은행

우리나라는 IT강국이다. 그렇다 보니 은행의 인터넷뱅킹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참 잘 만들었다는 느낌보다 왜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하는 푸념부터 든다. 계좌이체 한 번 하려면 공인인증서, 아이디,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 기입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책상에서 카드를 꺼내느라, 적어둔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캐나다 대형 은행 중 하나인 TD bank의 인터넷뱅킹 사이트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겉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기능 면에서는 1세대 휴대전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타인이나 공공기관 계좌로의 이체는 사전등록 없이 불가능하다. 거래내용이나 잔액을 확인하고 본인 소유의 계좌 간 이체업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는 개인당좌계정이 발달되어 있어 가계수표발행을 통해 결제기능을 대부분 수행한다. 따라서 인터넷뱅킹은 대체재라기보다 보완재에 가깝다.

단순한 형태의 인터넷뱅킹은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패스워드 하나로 만사 통과다. 내가 지정한 계좌가 아니면 이체가 불가능하니 안심클릭이 따로 없다. 보이스 피싱, 보험사기 같은 불법 거래도 계좌이체가 자유롭지 않다면 쉽게 발생하기 어렵다. 보안망이 뚫려 해킹 당할 가능성도 낮다. 돈세탁(money laundering) 목적의 계좌이체는 오프라인 창구보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감독당국도 지금의 인터넷뱅킹을 선호한다.

IT와 금융의 잘못된 만남은 증권사의 온라인 트레이딩 시스템인 HTS에서 극에 달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매매회전율은 HTS의 발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 위탁매매수수료 중심의 천수답 농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으로 주식을 사니 증권주가 뜬다는 기사야말로 우리 금융산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온라인 트레이딩으로 개미투자자들의 종잣돈은 자꾸만 줄어들고 HTS 업그레이드는 이들의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한다.

금융회사 IT투자의 70% 이상이 기존 시스템의 유지·보수에 지출되고, 대규모의 시스템 업그레이드는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가 개발되면 IT 시스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합병이라도 할라치면 시스템 통합 이슈까지 불거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내 금융회사들은 최소한의 IT투자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온라인 영역만 보더라도 투자의 비효율성이 발견된다. 고객을 인터넷뱅킹으로 내모는 것이 은행 수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이는 오산이다. 은행지점이 고객과의 접점으로 다시 각광받는 시기는 이미 오고 있다.

겨울에 핀란드를 가 본 사람이라면 왜 노르디아(Nordea)은행의 인터넷뱅킹이 세계 최고 수준인지를 짐작할 것이다. 그 눈보라가 몰아치는 궂은 날씨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잿빛 하늘을 헤치고, 은행을 찾아갈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핀란드의 상징인 노키아보다 자신들의 IT기술이 앞선다고 자랑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지천으로 널린 것이 금융회사 지점들이다. 준비되지 않은 고객에게 현란한 수준의 IT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고객이 금융회사에 정말 바라는 것이 업그레이드된 IT서비스인지, 아니면 조금 더 친절하고, 고객 돈을 내 돈처럼 귀히 여기는 직원을 보고 싶은 건지 생각해 볼 일이다.

홈디포(Home Depot)에서 정답을 찾아보자. 입구에서부터 두세 명의 직원이 손님을 맞이한다. 생전 본 적도 없으면서 오늘 정말 잘 왔다고 등을 두드린다. 최고의 친근감을 이렇게 표시하고 있다. 아이템별로 구역별로 전문가가 있고, 원하면 한 명의 직원이 따라다니면서 종합컨설팅까지 해 준다. 자기들 물건이라고 모두 최고라 말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경험을 고객과 공유하면서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한다. 그 큰 매장이 구멍가게처럼 오밀조밀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빈틈이 없다. 이 회사의 온라인 콘텐트는 훌륭하기 그지없다. 홈디포는 이제 전 세계 최고의 소매점 중 하나로 성장했다. 반면 우리 금융회사에 고객을 도와주는 전담직원(Help Desk)이나 있는가. 고작 생각해 낸 방안이 청원경찰이라니, 이는 난센스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 앞서간다. 시간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을까. 투자에도 우선순위가 있고 금융회사가 해야 할 일에도 선후가 있는 법이다. 대규모 IT투자는 고객으로부터 벌어들인 이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앞서 고객의 고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대출금리 인하를 해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IT와 금융의 접목이 금융회사, IT벤더, 통신사 중심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다시 생각하자.

IT는 인프라다. 인프라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구현하는 수단에 불과하지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고객의 니즈에 맞는 다양한 콘텐트의 개발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이 대세인 세상에서도 아날로그는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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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