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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사이에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 계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당이, 그리고 누가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한 적자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싸움이 격해진 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 “노무현 정신과 별로 관계없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민참여당 간판으로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반박했다.

“참여당은 한나라당 2중대냐. 왜 노무현 정신에 맞지 않게 영남권에 출마하지 않는지 모르겠다”(송영길 최고위원)거나 “유·불리에 따라 입지를 바꾼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질타한 보따리 장수와 무엇이 다른가”(김민석 최고위원)라고 꼬집었다. “노무현 정신을 파는 야바위 정치”란 비아냥도 나왔다. 유 전 장관은 지난 총선 때 고향인 대구에 출마했었다.

참여당은 올 1월 창당됐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주축이다. 창당 정신은 노무현 정신 계승이다. 아예 창당 선언문에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DJ 계승을 내건 조직도 발족한다. 창당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국민의 정부에서 참모를 지냈던 조순용 전 청와대 비서관, 설훈 전 의원 등은 ‘행동하는 양심’(가칭) 출범식(26일)을 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비전의 창조적 계승”을 앞세운다. 동교동계 중진·원로들은 신당 창당을 모색 중이다. ‘리틀 DJ’로 불리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적극적이다. 지방선거 공천에서 옛 민주당계가 대거 탈락할 경우 집단 탈당→신당 창당의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야권의 DJ·노무현 계승 경쟁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 정말로 계승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두 전직 대통령이 일생을 통해 가꿔온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유명을 달리한 두 정치인에 대한 꺼지지 않은 대중적 인기와 추모 열기에 편승해 그 유산을 상속받으려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노 전 대통령의 1주기(5월 23일)가 묘하게 지방선거(6월 2일)와 오버랩되는 효과를 노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상상력이나 철학의 빈곤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DJ가 평가받는 것은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는 데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위대함은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의를 위해 떨어질 줄 알면서도 연거푸 부산에 출마하는 도전과 용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신을 헌신하는 구도자적 실천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들이 누구의 정신이나 사상을 계승하자는 명분을 앞세우는 정치를 했더라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어부지리를 노린 얄팍한 계산으로 정치를 했다면 퇴임 후는 물론 사후에도 국민적 추모 발길이 이어졌겠는가.

야당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려거든 당장 낯 부끄러운 계승 공방을 그만둬야 한다. DJ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미 야당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그런데도 내가 진짜니, 원조니 하며 다투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젠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입으로만 햇볕정책 계승을 얘기할 게 아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어떻게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풀어나갈지에 대해 구체적 해결책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경제위기로 더 팍팍해진 중산층, 아이들 과외비 마련과 고용 불안에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을 어루만져 줄 해법을 내놔야 한다.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겨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비전을 놓고 밤샘 토론이라도 벌여야 한다. 국격을 높이고 높아진 국민의식 수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정치문화 개혁을 위한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놔야 한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거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시대를 고뇌하고 가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용기가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김대중 정신이고 노무현 정신이다.

어제 법랍 55세로 입적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다. “어떤 비본질적 행위로도 죽은 뒤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을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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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