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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더 잘 가르쳤어야 했는데 … 길태야, 자수해라”

“길태야 자수해라.”



여중생 살해 피의자 아버지의 호소

아버지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했던지 물을 들이키며 말문을 열었다. 얼굴엔 ‘자식 잘못 가르쳤다’는 회한도 가득했다. 어머니는 눈시울을 훔치며 “(이양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했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흉악한 살인범으로 돌아온 이후 매일 죄책감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피의자로 지목된 김길태의 부모 얘기다.



8일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 자택에서 만난 김길태 아버지 김모(70·사진)씨는 인터뷰 내내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그는 맨 정신으로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소주 한잔 마셨다”며 아들 얘기를 했다. 김씨는 아들을 두 살 때 입양했다. 처제가 다니던 교회 앞에 버려진 애였다. 딸만 셋이라 할매(어머니)는 아들 욕심이 너무 컸다고 김씨는 당시를 회고했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서도 잘 뛰어놀고 친구도 많았어요.” 아직도 아버지는 김길태를 ‘착하고 명랑했던 아들’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업고등학교에 보냈다”고 말했다. 어릴 적 김길태는 주판을 잘 다루고 계산에도 능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변하기 시작했다. 말수가 없어지고 학교 수업도 빼먹었다. 내성적이지만 착한 아들이라 어머니 윤모(68)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윤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같이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 정문까지 데리고 간 적도 있다”며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아들을 위해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을 잡겠다’고 삭발까지 했던 아들은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아들은 범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좀 더 강하게 아들을 훈육하지 못했던 게 뼈에 사무치게 후회가 됩니다.” 김씨는 “입이 탄다”며 다시 물을 들이켰다.



이듬해 아들은 폭행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쓰러져 입원했다. 이후 어머니는 혈압 약 등을 손에 쥐고 살고 있다. 눈물을 닦던 아버지는 책장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들이 교도소에 있을 때 사식을 넣어준 차입증이었다. 아버지는 2007년 10월 성폭행 미수로 안양교도소에 복역하던 아들을 찾아가 빵 5개와 우유 5개를 사식으로 넣었다. 수첩을 들추자 5만원·10만원이 찍힌 우편환 영수증 한 뭉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모은 일당을 아들에게 보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에 교도소에서 나오면서 이번에는 잘해 보자고 손을 잡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문제 있는 아이였지만 잘될 줄 알았지. 대학이라도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허공을 쳐다봤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 손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들 손자도 보고 싶었는데…30년 세월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양) 부모님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부산=김상진·강기헌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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