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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엔 백남준 있었고 이 땅엔 박현기 있었다

물이 찬 TV 수상기를 힘겹게 들고 있는 이 남자를 보라. 1970년대식 장발에 꽉 다문 입 매무새가 결기 있어 보인다. 때는 7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물이 담긴 영상이 있는 모니터를 들고 기울이는 각도에 따라 물의 기울기가 달라 보이는 상황을 연출한 그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박현기(1942~2000)다. 그는 말했다. “완전한 대상이 그물에 걸렸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 대상은 추상의 결집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갤러리현대서 10주기 회고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꼽히는 백남준(1932~2006)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한 해외파였다면 박현기는 토종 국내파였다. 백남준이 “예술은 텃세다. 보편성이 아니다”라며 “황색 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백인중심의 세계 미술계에서 전사처럼 싸울 때, 박현기는 변방에 앉아 고독한 싸움을 벌였다. 당시로선 현대미술의 후진국이었던 한국에 앉아서 오로지 생각 하나로 세계 머리에 올라앉는 기량을 보여준 작가다. 더구나 70년대라는 당시 한국 상황의 암울함을 헤아려보면 그의 외로운 분발은 놀랍다.



고 박현기 작가가 1979년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행위예술 ‘물기울기’. 정적(靜的)이면서 관념적인 이 작업은 비디오 아트를 동양적 정신문화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본 그의 독특한 해석을 엿보게 한다. [갤러리현대 제공]
9일 개막해 2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박현기 10주기기념 회고전’은 이런 선생의 정신을 오랜만에 돌아볼 수 있는 자리다. 그의 작품이 소장된 곳이 일본의 미술관을 포함해 다섯 곳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씁쓸하다.



박현기는 비디오 아트에서 매체를 조작하여 시간을 조절하고 시간과 놀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예술이란 깨닫는 수단이듯이 비주얼은 깨닫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양파를 벗기는 일과도 같다”라 했다. 스크린 위에서 물을 기울게 하고, 스크린 위에서 돌을 움직였다. 환영과 몽상, 그것이 이 예술가가 현실 속에서 이루려고 했던 주제였다.



돌을 생각하며 어느새 높이 떠 돌 반대편의 세계를 바라보던 그는 “돌 작업은 자신을 표현하고 서구과학의 한계를 느낀 우리 입장과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서술했다. 그는 비디오로 동양화를 그리려 했고, 그 미완성의 과업을 추구하다가 죽었다.



그가 30년 전에 물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물 또는 세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진지한 물음에 우리는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02-2287-3500.



정재숙 선임기자



◆박현기=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수료하고 건축과로 전과해 졸업했다. 70년대 초 고향 대구로 내려가 실내장식 기획사를 차린 뒤 대구에서 일어난 현대미술 운동에 동참하며 행위예술과 비디오 아트 등 전위적인 작업을 보여줬다. 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80년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해 그 독창성을 세계에 알렸다. 2000년 1월 타계한 뒤 유작전이 2008년 9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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