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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무대, 서로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다


영화의 원작이 된 연극,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나란히 공연 중이다. 영상이 빠진 후 한층 강해진 스토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무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이

“인생, 한바탕 꿈인데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숨을 거둔 공길(오만석·김호영)을 품에 안은 연산(김내하·전수환)의 독백이 무대에 울린다. 연극 ‘이(爾)’의 막을 열고 닫는 인물은 연산이다. 오프닝 무대에서는 상복 차림에 봉두난발을 하고 “눈앞에 엄연히 있던 것들, 죽어다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넋두리를 되뇐다. 공길과 함께 ‘인생을 한판 놀이’처럼 살고자했던 연산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사다. 이 작품에서 연산은 폭군이라기보다 허무한 인생 앞에서 쓸쓸해하는 한 인간이다.

연산의 인간적인 비애와 더불어 이번 공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광대들의 웃음과 유희다. ‘윗사람’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극중극 형식의 광대극인 ‘소학지희(말장난·성대모사·재담·음담패설 등으로 시정을 풍자하던 조선시대 유희극)’를 통해 풍자된다. 특히 연산의 눈과 귀를 가린 장녹수와 형판 윤지상의 비리를 고발하는 대목이 신랄하다.

“길고 푸른 장녹수에서 하고한 날 헤엄쳐 다니는 오리들이 뭔 줄 알아?” “탐관오리!”“그 장녹수를 뻔질나게 건너다니는 배가 있어요. 그 배 이름이 간신배야.” “형판 댁 가는 길에 이 목의 때는 임금님께 진상해라.”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광대짓이 점차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장생(이승훈), 마지막 판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광대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공길이 객석에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도 작지 않다.

흥행영화 ‘왕의 남자’(2005년)의 모태가 된 연극 ‘이’는 2000년 초연돼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상·희곡상·연기상, 2001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초연 10주년을 기념해 이번 무대에서는 오만석·김내하·이승훈·정석용 등 원년멤버가 뭉쳤다. 초연 때부터 2006년 공연까지 네 차례나 공길 역을 맡은 오만석은 남자와 여자,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역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한다. 김태웅 연출.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4만~6만원.

▶문의=1588-5212


기억 속에서 되찾은 형제애…레인맨

연극 ‘레인맨’은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가 열연했던 동명의 영화(1988년)가 원작이다. 기본 줄거리는 영화를 그대로 따른다. 하지만 자폐증을 앓는 형(레이먼)과 동생(찰리)이 함께 여행하면서 우애를 되찾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서로의 기억을 맞춰가며 이해하는 과정이 부각된다. 특히 축구는 레이먼과 찰리로 하여금 어릴 적 추억을 되새김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둘이 공을 주거니받거니 하며 정해진 횟수를 채워가는 장면은 애드리브로 진행돼 성공 여부에 따른 의외의 재미를 준다.

배우들의 연기대결 또한 볼거리다. 실제 형제인 남경읍과 남경주가 레이먼과 찰리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두 배우의 동반출연은 1995년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이후 15년만이다. 연극 무대에서는 첫 만남이다. 남경읍은 “무대에 나서기 전, 동생이 ‘형, 떨려’라고 하더라”며 “(국내 간판급 뮤지컬 배우인)동생이 무대 뒤에서 떠는 줄 처음 알았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중후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연기를 해온 박상원의 변신도 화제다. 그는 “레이먼의 실존인물인 킴 피크를 모델로 손동작이나 걸음걸이 등 평소 습관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찰리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원기준이 박상원과 호흡을 맞춘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경계심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손놀림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남경읍과 박상원의 레이먼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남경읍이 귀여운 레인맨이라면, 박상원은 순진무구형이다. 축구의 역사, 원주율, 전화번호부 등을 달달 외우는 레이먼의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변정주는 “형제애는 드라마 진행을 위한 포장일 뿐”이라며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3000~8만8000원.

▶문의=02-548-1141


[사진설명]장녹수에게 모욕을 당한 공길을 위로하는 연산(위쪽·연극 ‘이’). 전화번호를 달달 외우는 형 레이먼의 기억력에 놀라는 동생 찰리(연극 ‘레인맨’).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사진제공=오디이컴·쇼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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