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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23) 오봉호(五峯蠔ㆍ거북손)

거북손은 생긴 건 투박해도 맛은 기가 막히다.
오봉이 나란히 서있다. 바깥쪽 두 봉은 낮고 작으나 안쪽 두 봉은 가장 크며 가운데 봉우리를 안고 있다. 황흑색이다. 뿌리 둘레는 껍질이 있다. 유자와 같으며 습하다. 살에도 붉은 뿌리와 검은 수염이 있다. 맛이 달다.(부분 생략)



망설였던 친구, 두세 끼 반찬감을 쓸어 먹었다



친구가 놀러 왔다. 낚시를 하고 싶어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러 날째 탁하던 물은 그믐사리가 되면서 상태가 더욱 나빠져 있었고 수온도 8도였다. 이 정도면 최악이다. 하지만 그의 두 눈 속에서는 감성돔과 벵에돔이 첨벙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말려.



우리가 간 곳은 삼백량굴. 거문도 일급 포인트 중 하나다. 그렇지만, 포인트라 해서 늘 고기가 널려있는 게 아니다. 갯바위는 정육점도 아니고 수산시장도 아니다. 더군다나 썰물 때 아닌가(기본적으로 갯바위 낚시는 들물 때가 유리하다). 나는 낚시에 최악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바람이나 쐬러 나왔다고 생각하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의 입에서 탄식이 나오더니 급기야 불만스러운 소리를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공연히 내가 미안해졌다. 그믐사리답게 물이 한정 없이 났다. 간조대가 까맣게 드러나자 나는 칼을 쥐고 갯바위 틈으로 내려갔다. 바닷가는 낚시 안 해도 술안주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다.



간조대에 붙어있는 홍합, 비말(삿갓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녀석은 방심하고 있을 때 틈으로 재빨리 칼끝을 밀어 넣어야 한다. 보말·베말이라고도 부른다), 따개비·고둥 따위가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중 독보적인 게 바로 거북손이다.



내가 낚시를 포기하고 채집으로 돌아서자 친구는 막막해 했다. 이게 뭐야? 거북손이라는 거야. 먹는 거야? 응. 이것을 어떻게 먹어? 먹어나 봐. 맛있어? 먹어나 보라니까. 하, 여기까지 와서 이런 것이나 먹어야 돼? 일단 먹어 보라니까. 오후 내내 우리가 했던 대화가 이랬다. 하지만 이거, 맛있다. 손암 선생께서도 미감(味甘· 맛이 달다)이라고 적어 놓으셨다.



“이것은 스스로 완벽한 맛을 가지고 있네요.”



일전에, 부산에서 푸드 디렉터를 하고 있는 후배가 먹어보고 한 말이다. 그 말이 딱이다. 어떤 양념도 필요 없다. 자신이 쫀득거리는 고기이면서 조미료요, 감미료다.



따개비류인 이 녀석은 거북이 발처럼 생겼다 해서 거북손이다. 거북발 이러면 이상하다. 섬에서는 흔히 보찰이라고 부른다. 대감감투라는 별칭도 있다. 지난번에 다뤘던 고둥이 채취하기 가장 쉬운 거라면 이 녀석은 가장 어려운 놈이다.



바위틈에 석회질 느낌의 자그마한 산(山) 같은 게(예전 관광지에서 흔히 팔았던 산 모양의 배지 같은) 있다면 바로 이 녀석들이다. 어디나 많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 손을 자주 타는 곳에는 큰놈은 없다. 인적 드문 갯바위를 간다면, 예를 들어 낚시에 빠진 가족이나 친구 따라서 갯바위 포인트에 간다면, 특히 썰물이면 한번 해 볼 만하다. 알아야 먹는다. 아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장갑과 칼이 필수. 처음으로 해 보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워낙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칼 집어넣을 공간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맨 가장자리 것부터 하나씩 밑동을 잘라내면 점차 공간이 생긴다. 큰 녀석들은 가운데 있기 십상이다. 칼끝을 최대한 바닥에 붙여 잘라낸다.



채취를 했으면 두어 번 씻어낸다. 바닷가에서 바로 먹겠다면 코펠에 바닷물을 넣고 몇 번 저어 세척을 한다. 그런 다음 약간의 민물을 넣고 삶는다. 오래 삶지 않아도 된다. 거품 넘치는 것은 주의.



아래쪽 껍질을 손톱 끝으로 잘라 떼어내고 나면 원통형 살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잡아당긴다. 그게 어려우면 봉우리 양 옆으로 이빨을 대고 지그시 눌러주면 잘 벌어진다. 뿌리 쪽은 살덩어리이고 위쪽은 고사리 모양의 부속지(만각·蔓脚)가 있다. 손암 선생은 물고기의 아가미 같은 수염이라고 적어놓으셨다. 이것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생물을 잡는다. 모두 먹는다. 집에서 무쳐 먹을 때도 약간의 간장 양념과 참기름이면 충분.



돌아오는 길에도 친구는 장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그것은 육지에서 온 낚시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잡어 입질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잡은 볼락 두 마리가 유일한 생선이었다.



그날 친구와 나는 볼락 두 마리 굽고 거북손에다 술을 마셨다. 긴가민가하던 친구는 연달아 감탄을 하면서 집어 먹었는데 두세 끼 반찬은 되겠다 싶은 게 한순간에 그만 동나고 말았다. 그는 이것을 먹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였다.



소설가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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