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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여성 참정권 부르짖으며 죽음 택한 에밀리 데이비슨

에밀리 데이비슨(1872~1913, 맨 왼쪽)은 영국 왕 조지 5세 소유의 말에 부딪혀 사망했다. 이날의 참사는 남녀 평등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고 영국 전역의 여성 참정권자들을 분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영국 여성은 1918년 처음으로 투표권을 획득했다.
1913년 6월 4일 런던 남부 엡섬다운스에서는 133년 역사의 더비 경마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 전통에 따라 국왕 소유의 말 엔머도 참가했다. 말들이 결승점을 앞두고 코너를 돌 때 엔머는 끝에서 세 번째로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관중석에서 “앗!” 하는 탄성이 들렸다. 한 여성이 울타리 밑을 지나 경마코스 안으로 들어가더니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엔머 앞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여성은 충격으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엔머의 기수인 존스는 말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말들이 다 지나간 것으로 착각하고 경마코스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 일단 말들이 다 통과한 뒤에는 관중이 경마코스로 다 함께 나와 결승점까지 걸어가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목격자들은 그녀가 말 앞에 뛰어들기 전에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슨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성 선거권 운동가였던 데이비슨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고 발생 4일 후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초 영국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고조되고 있었다. 1869년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이 출간된 이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져, 이듬해 기혼 여성에 대한 재산소유권이 인정됐고 1880년에는 여성에게 주의회 투표권이 부여됐다. 그 뒤 1883년과 1892년에 전국적 수준의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모두 부결됐다. 그러자 1897년 여태껏 서명과 청원 방식으로 활동하던 운동가들이 모여 ‘전국여성선거권운동단체연합’(NUWSS)을 결성했다.

그러나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 방식으로 진행된 운동을 정부가 탄압하려 하자 운동은 과격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1903년 ‘여성사회정치동맹’(WSPU)이 결성되어 적극적 공세를 펼쳤다. 여성 선거권 운동가들은 의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했고 빈번한 시위로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체포 구금된 운동가들은 정치범의 대우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벌였다. 1912년 3월이 되자 이들의 행동은 더욱 격렬해졌다. 런던의 주요 대로에 몰려와 상점의 유리창을 부수고 건물을 불태우는가 하면, 화랑의 그림을 찢고 버킹엄 궁전의 난간에 몸을 묶기도 했다.

에밀리 데이비슨 사건은 수도 런던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태로 몰아넣은 전국적 항의운동의 절정을 이룬 사건이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인간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여성들의 고난에 찬 역정을 돌아본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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