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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북한은 ‘갈라파고스의 섬’인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2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북한과 연고가 없는 기자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탈북자가 있을 정도로 숫자가 늘었다. K씨다.

그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송금을 한다. 석 달에 한 번씩 100만원을 보낸다. 30%를 커미션으로 떼고, 나머지가 중국 위안화(貨)로 가족에게 전달된다. 그때마다 K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수령 여부를 확인한다. 가족은 조선족 브로커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데, 지금까지 배달 사고가 난 적은 없다고 한다. K씨는 “나도 살기 빠듯하지만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꼬박꼬박 돈을 보낸다”고 말한다. 그 덕에 K씨 가족은 굶지 않고 지내고 있다.

중앙 SUNDAY 최신호(3월 7일자)는 서울에 살고 있는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친척과 통화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탈북자들의 도움으로 취재기자는 북한 주민과 직접 전화 인터뷰까지 했다. 북한 당국의 단속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루에도 수백 명의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탈출한 가족이나 친척과의 통화를 위해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국경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북한의 각종 정보와 루머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압록강 인근 국경 지대는 이미 ‘남한 경제권’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단속을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북한 체제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관측을 비웃는 사진이 어제 아침 중앙일보 1면에 실렸다. 북한의 대표적 화학섬유 생산공장인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을 축하하는 함흥시 군중집회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참석했다. 10만 명의 ‘붉은 군중’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통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사진이다. 이완된 듯하면서도 통제가 이루어지고, 뚫린 것 같으면서도 막혀 있는 사회가 북한이다. 체제 붕괴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처음 나온 게 벌써 15~16년 전이다. 당장 무너질 것 같지만 용케 버티고 있다.

일러스트=강일구
북한은 보편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다.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면 서유럽 공산당원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모욕이라고 화를 낸다. 변형된 스탈린주의 국가, 유격대 국가, 유교 문화와 국가사회주의의 하이브리드 변종 등 온갖 분석이 다 나오고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북한 체제는 1945년 이전의 일본식 천황제 군국주의의 재판(再版)이라고 지적한다. 신지호 박사(국회의원)도 같은 의견이다. 천황은 수령으로, 신도(神道)는 주체사상으로, 군국주의는 선군사상으로 변형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북한은 2대 세습을 거쳐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사회가 북한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보는 듯하다.

굶어죽는 북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문이 최근 들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의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보통 춘궁기인 4월부터 아사자(餓死者)가 나오는데 올해는 1월부터 나왔다”면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3~4월이 되면 사태가 아주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다면 북한은 올해 100만~120만t의 식량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도 신통하게 버티고 있는 자신들의 독자적 생존술을 스스로 대견해하는 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악조건 속에서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총명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이 굶주리고 있는 마당에 이런 것들은 한낱 작은 지혜에 지나지 않는다.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몸값을 올리겠다고 기를 쓰는 꼴이다.

북한에 핵무기는 국제정치적으로 쓸모없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지도에서 사라질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쓸 수도 없고, 팔 수도 없다. 더구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선제 핵공격을 배제하고, 억지력에 국한하는 쪽으로 핵 정책 선회를 검토하고 있다. 북한 같은 나라에는 굳이 핵무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핵무기와 맞먹는 파괴력을 가진 초정밀 재래식 무기로도 북한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북한의 조잡한 핵무기는 결코 미국에 대한 억지력이 될 수 없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라는 금(金) 밥그릇을 들고 동냥을 하고 있다. 값을 쳐준다고 할 때 북한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금 밥그릇을 처분해야 한다. 그걸로 백성의 주린 배부터 채워야 한다. 강성대국은 그 다음에 추구해도 늦지 않다.

일본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한 탓에 세계 시장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현상을 갈라파고스 현상이라고 부른다.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諸島)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로 지내다 보니 고유한 생태계를 갖게 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 체제야말로 갈라파고스의 섬이다. 바깥 세상의 흐름과 담을 쌓고 독자적 진화 과정을 밟아온 탓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다 이구아나와 코끼리 거북, 민물 가마우지가 득실거린다. 이대로 가면 멸종이 멀지 않았다. 그 전에 스스로 문을 열어 바깥의 조류에 적응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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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