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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의 한국 배우기 … 축배는 ?

1983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일본을 배우자’는 내용의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인구를 가진 일본에 대졸 엔지니어가 더 많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 건국 이후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서 “일본을 배우자”는 발언이 나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일본 기업들의 미국시장 진출과 일본 경제의 부상을 배경으로 일본 경제체제의 우월성이 거론된 시기였다.

미국의 ‘일본 배우기 열풍’은 이후 10년 넘게 이어졌다. 일본 학교 커리큘럼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졌고, 급기야 일 문부성은 초·중·고교의 교육내용을 담은 학습지도요령을 영문으로 제작해 각국에 배포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일본 기업의 경영방법, 노사관계에서 치안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미국 주요 도시의 경찰간부들이 일본의 경찰활동을 견학하는가 하면, 85년엔 미 상원에서 ‘일본의 산업기술을 배우자’는 취지의 법안까지 통과됐다. ▶중요한 일본의 기술개발에 관한 연차 보고서를 만든다 ▶일본기술에 관한 문헌을 수집해 번역하는 사무소를 일본에 설치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후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와 장기불황을 체험해야 했고, 지금 미국에선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말이 나돈다.

그런데 이번엔 일본에서 ‘한국을 배우자’고 난리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선전한 한국 스포츠는 물론이요, 대통령이 나서 원전수주까지 따내는 세일즈 외교도 겸허히 배워야 한단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 등 유력 언론들은 연일 사설과 특집기사로 한국 기업들의 선전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실제로 D램 반도체·TV·휴대전화·조선 등의 분야에선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고, 자동차·철강·화학 분야에서도 한·일 간 격차는 크게 줄었다. 수십 년간 미국 시장을 장악해온 소니와 도요타가 삼성과 현대차에 시장을 넘겨주고 있는 현실도 일본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11배였던 것이 5.3배로,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3.9배였던 것이 2.1배로 줄었다. 솔직히 일본에 살면서 요즘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적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미국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80년대 당시 일본만큼의 힘을 갖춘 걸까. 지난해 한국은 대일 무역에서 27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한국 기업들이 수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소재를 대부분 일본에서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후 지금껏 단 한번도 대일 무역적자를 면해본 적이 없다. 미국과 유럽 등에선 일본 기업을 이기면서도 일본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춘다.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사태로 자존심이 꺾이긴 했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이 가격경쟁과 양산기술에서 강세지만 일본 기업들은 기술력과 품질로 승부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일본 소비자들은 여전히 일본 제품이 최고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다른 말 말자. 일본 시장이 진정한 경쟁의 장이다. 이곳에서 삼성 TV가 샤프나 도시바 제품을 누르고 현대자동차가 도요타자동차만큼 팔리는 날, 축배는 그때 들어도 늦지 않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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