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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리고 상대를 공격하라,은폐와 엄폐는 ‘회색 사고’의 전형

6·25전쟁에 뛰어든 중공군 병력이 1951년 4월 이른바 ‘춘계 공세’를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행군하는 중공군 병사들이 무기와 함께 나무 한 그루씩을 어깨에 걸쳤다. 공중 정찰이 시작되면 이들은 나무를 세워 자신을 감췄다. [중국 해방군화보사]
우회, 매복, 야습과 기습, 깊은 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꽹과리와 피리소리, 그리고 기만과 교란…. 한국전쟁에 뛰어든 중공군의 특징이다. 그들이 구사했던 전법(戰法)이 지니는 특색을 개념적으로 정리해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든 중공군의 출발은 기만(欺瞞)에서 시작한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회색(灰色) <7>

도쿄(東京)에 본부를 두고 미군과 연합군을 총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이 펼친 기만 전술에 보기 좋게 당한다. 거짓으로 철수하는 척하면서 연합군의 공세를 늦추게 만들었고, 적을 앞에 둔 채 무질서하게 퇴각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중공군 전력이 생각보다 못 하다’는 오판을 유도했다. 사전에 미군 27명이 포함된 연합군 전쟁포로 100명에게 “우리가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뒤 느닷없이 풀어줌으로써 이들이 복귀해 연합군 본부에 “중공군이 보급난에 빠졌다”는 정보를 흘리도록 했다.

이런저런 기만 술책에 당한 맥아더 원수는 1950년 11월 말 “올해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보낼 수 있다”며 이른바 저 유명한 ‘크리스마스 대공세’에 들어간다. 그러나 중공군은 평안북도의 험준한 산맥 곳곳에, 함경도의 깊은 산골 여기저기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미군은 크리스마스 귀향(歸鄕)의 꿈에 부풀어 그 산골짝 깊은 곳으로 서슴없이 진군한다. 탱크와 중장비로 무장한 채 들어갔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미군 역사상 기록적인 패배에 해당하는 전투를 미국은 여기서 치러야 했다. 미군은 공군 정찰을 통해 압록강 이남 지역을 꾸준히 살폈다. 그러나 대규모의 중공군은 그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중공군은 소규모에 불과했다. 이런 정보를 종합한 맥아더 사령부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은 흔적은 있지만, 규모가 보잘것없는 수준이다”는 판단을 내렸다.

중공군 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은 그 반대였다. 그들은 밤에만 이동했다. 낮에는 깊이 판 참호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낮에 이동할 때는 나무 한 그루씩을 구해 등에 지고 다녔다. 미 공군기가 하늘에 뜨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등에 지고 다니던 나무를 세워 그 아래에 서 있었다. 미 공군기는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심어진 나무로 본 것이다.

중공군의 다른 특징은 야습(夜襲)이다. 철저할 정도로 밤에만 공격을 펼쳤다. 그리고 동이 트면 반드시 물러갔다. 미군의 공군기는 이들을 타격할 수 없었다. 사거리와 폭발력에서 뛰어난 미군의 155㎜ 야포도 이들을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 없었다. 저들의 또 다른 특색은 교란 전술이다. 컴컴한 밤에 중공군의 공격을 먼저 알리는 것은 꽹과리와 피리였다. 컴컴한 밤 저편에서 들려오는 피리와 꽹과리 소리는 국군과 미군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소리는 여러 군데에서 들려왔다. 적의 방향을 엉뚱하게 착각하도록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미군들은 급기야 심한 노이로제에 시달려야 했다.

중공군이 곳곳에 파놓은 참호도 정밀하면서 깊었다. 식량과 무기 등을 쌓을 수 있도록 땅을 깊이 팠으며, 미군의 포격이 강해지면 그 속에 들어가 꽁꽁 숨은 채 나오지 않았다. 아군이 중공군의 진지를 점령하면 그들은 깊은 참호 속으로 숨어든 뒤 후방 지원부대에 연락해 포격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빼앗긴 고지를 되찾았다.

적의 주력은 바로 앞에 있는 듯했다. 전면의 공격이 치열할 때 옆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국군과 미군에게 승리는 없었다. 중공군이 구사한 우회와 포위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옆으로 도는 전술, 우회와 그에 뒤이은 포위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전선에 나섰던 국군과 미군 등을 크게 괴롭혔다.

미군은 중공군이 참전 초기에 구사했던 전술 방식을 ‘운동전(movement war)’으로 불렀다. 상대를 고립된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적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분산된 그들을 포위해 섬멸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우회와 매복을 번갈아 펼치면서 적의 틈을 노려 이리저리 파고드는 전술이다.

그런 특징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나를 가려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호 속에 깊이 숨어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상대의 화력을 견뎌내고, 나무를 한 그루씩 지고 다니다가 상대의 공중정찰이 시작되면 그 아래 숨는다. 컴컴한 밤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적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경로와 방법을 통해 습격한다.

중공군의 모습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늘 자신의 모습과 실력을 감추고 다녔기 때문이다. 한자(漢字)의 단어로 중공군의 전법을 정리하자면 ‘은폐(隱蔽)와 엄폐(掩蔽)’다. 나무와 그 잎사귀로 은폐해 상대의 정찰을 피했고, 참호라는 장애로 자신을 엄폐해 적의 화력을 비켜갔다. 모든 전술 안에 들어 있는 개념은 숨고(隱), 가려서(掩) 자신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蔽)다는 점이다.

우회와 매복 역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야습과 기습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행하는 공격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를 기만해 교란(攪亂) 상태에 빠져들게 한 뒤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전법이다.

전쟁은 그곳에 뛰어든 주체의 종합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소’다. 전쟁을 수행하는 개체의 모든 사고력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60년 전의 전쟁을 통해 본 중국의 종합적 사고력은 은폐와 엄폐로 나타난다. 자신을 가리고 상대를 공격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가림’과 ‘숨김’의 사고를 전형적이면서 총체적으로 구사한 한국전쟁에서의 중공군. 중국만이 표출하는 ‘회색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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