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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뚫고 간 현장 경영에 답 있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
STX그룹은 석 달 새 해외 플랜트·건설 부문에서 171억 달러(5건, 약 20조원)를 수주했다. STX그룹이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이 부문에서 수주한 금액은 176억 달러다. 2년여 동안 수주한 금액의 97%를 지난 석 달 동안 채웠다. STX가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수주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STX는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100억 달러 규모의 주택건설사업을 수주했다. 이는 국내 업체가 해외 단일 주택 사업으로 수주한 공사 가운데 최고 금액이다. 지난해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 총액(500억 달러)의 5분의 1에 달한다. 이 사업은 가나 10개 도시에 주택 20만 가구를 건설하는 것으로 STX는 건설자금을 조달하고 현지 인력 30%를 의무 고용해야 한다.

STX는 올 들어서도 이라크에서 잇따라 수주 낭보를 전했다. 1월 이라크에서 30억 달러 규모의 플랜트 프로젝트를 따낸 뒤 불과 한 달 만에 32억 달러 규모의 플랜트를 또 수주했다. STX는 1월에 이라크 정부와 남부 바스라주에 300만t 규모 일관공정 제철단지와 500㎿급 발전소를 건설키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이로써 STX는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이라크 플랜트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2월에는 바스라주에 연간 180만t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복합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기로 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30억 달러 규모의 플랜트에 대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번 ‘수주 신화’의 중심에는 강덕수(60·사진) STX그룹 회장이 있다.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강 회장이 ‘수주 신화’를 쓰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폭탄도 뚫고 가는’ 강 회장의 ‘현장 경영’이 꼽힌다. 그는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면 해당 국가를 직접 방문해 현장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1월 27일(현지시간 1월 26일)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를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문 하루 전인 26일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 호텔에서 외국인 등을 겨냥한 대형 폭탄 테러가 잇따라 발생했다. 측근은 “이라크행을 미루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러나 이를 뿌리쳤다. 그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이라크로 향했다. 이라크 국경지대 인근 미군기지 벙커에서 새우잠을 잔 후 바그다드로 갔다. 그는 결국 이라크 총리와의 약속을 지켰고 이라크에서 다양한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결실은 잇따른 대형 플랜트 수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이라크의 재건 사업 규모가 10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이라크에서 STX의 플랜트 이외의 사업 진출 가능성도 커졌다.

그는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1년의 절반 이상을 국내와 해외 사업장을 방문하는 데 보낸다. 국내에 머물 때는 일주일에 2~3일은 지방 사업장을 찾는다. 이런 그의 현장 경영은 “현장을 잘 알아야 무엇을 뒷받침해야 할지 이해하고 빠르게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그는 수시로 “기업을 이끌어가는 경영자는 다양한 덕목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현장중심 경영과 속도경영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고 말하곤 한다.

그의 ‘속도 경영’은 이번 수주에서도 빛을 발했다. 일반적으로 그룹 총수는 확인할 일이 있으면 비서실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궁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담당 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모든 게 속전속결이다. 그는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해당 임원에게 질문한다. 해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면 바로 핵심 관계자만 대동한 채 해당 국가를 찾는다. 그만큼 속도를 중시한다.

지난해 10월 그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아프리카 장기 출장에 올랐다. 존 아타밀스 가나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보통 회장이 특정 사안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 그는 가나 대통령에게 “단순히 STX의 비즈니스 기회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나 국민을 위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게 가나 정부 고위층의 마음을 움직였고 지난해 12월 1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건설사업을 수주하며 가나 건설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원동력이 됐다.

당초 STX는 가나에서 주택 건설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 에너지 자원개발의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현지 조사를 실시하던 중 가나 정부가 대규모 주택사업을 원하는 것을 듣고 바로 낚아챈 것이다. 이러한 노력 덕에 그는 지난 4일 한국을 찾은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부통령을 만나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플랜트·에너지·조선·물류 등으로 협력사업을 다각화하는 내용의 MOU를 추가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공동주택 건설 프로젝트의 성공적 수행과 국가 인프라 구축사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STX의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더 나은 가나’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번 수주 퍼레이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앞을 내다본 ‘미래 경영’이 바탕이 됐다. STX는 그룹 매출의 94%를 조선·해운이 차지할 정도로 조선·해운 전문기업이다. 하지만 STX는 2007년부터 조선·해운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 때를 대비해 사업다각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사업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또 중동, 남미, 옛 소련지역(CIS),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아직 선진 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미개척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그는 특히 중동·아프리카 지역은 상대적으로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판단 아래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중동 지역 전문가를 영입하고 한국과 중동 주요 국가 간 네트워크 단체인 한·아랍 소사이어티 재단을 지원해 중동 지역의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결국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로 STX의 주력인 조선·해운 경기는 극심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플랜트, 해외자원 개발, 해외건설 등 STX가 적극 추진해온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에서는 오히려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을 들여온 중동과 아프리카가 ‘수주 신화’의 핵 역할을 했다.

2007년 말 영국 셸과 아일랜드 북서부 해상 지역 탐사 광구 지분 양수도 계약을 하며 해외자원개발에 본격 진출했고 2008년 6월에는 요르단 시멘트플랜트 설치 공사를 따내며 중동 플랜트 시장에도 첫 진출을 했다. 같은 해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초대형 주택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해외건설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는 올 초 신년사에서 “2010년은 STX그룹이 창업 10년째를 맞는 해로서 지난 10년의 성장을 다지고 동시에 새로운 10년의 도약을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올 한 해는 해운·조선·기계 사업의 안정 성장과 동시에 플랜트·에너지·자원개발 사업 확대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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