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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대가 영웅을 만드나, 영웅이 시대를 만드나…20개 질문에 답한다

예로부터 『자치통감』이니 『동국통감』이니 해서 역사책 제목에 ‘거울 감(鑑)’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적어도 동양에선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간파했던 게지요.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문화, 경제, 사회제도는 물론 과학까지 많은 것을 선인들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해서 이번엔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짚어낸 책을 골랐습니다. 아울러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아픈 과거를 돌아볼 책을 곁들입니다.



역사학의 굵직한 주제들 정면 거론
학자 모범 답안에 기자는 촌철살인
서구중심주의 분석틀은 아쉬워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

리처드 에번스 등 지음, 정기문 옮김, 민음사, 366쪽, 1만8000원




서구지성사의 큰 철학자 니체는 다른 학자들을 ‘학문 노동자’라며 은근히 경멸하곤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표현대로 “태양이 작열하는 곳을 피해 시원한 그늘에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구경꾼”의 태도를 비꼰 것이다.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근대학문의 딱딱한 틀 때문에 더욱 그랬지만, 지금이라면 기겁할 것이다. 세분화로 치닫는데다가 과학주의라는 학문 주술(呪術)에 사로잡혀 주눅 들었고, 잘아졌기 때문이다.



그런 니체라면 이 책에 미소를 보낼 것이다. 역사학의 큼지막한 20개 주제와의 씨름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위대한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국·혁명은 왜 탄생하는가?’ 질문은 계속된다. ‘무엇이 민족주의를 야기하는가?’ ‘전쟁은 왜 시작되는가?’….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당돌한 제시대로 ‘역사의 종언은 가능한가?’



한 번쯤 품어봤던 질문, 그러나 우리는 시원한 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니체의 문제의식대로, 그리고 책 머리말의 개탄처럼 “역사학자들이 정말 거대한 질문을 직접 다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역사가는 세밀한 증거를 제시하고, 조건을 붙여서 주장하고 전문분야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려고”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문노동자들의 그런 오랜 금기를 깼다. 방식도 참신하다. 매 주제에 역사학자·저널리스트가 각기 다른 답을 한다.



인간은 고대부터 지도력에 관한 교훈을 얻기 위해 역사를 살펴왔다. 사진은 지도력의 모범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인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가 1946년 9월 19일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을 때 수많은 인파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 처칠은 이날 ‘철의 장막’을 주제로 연설하며 유럽의 통일을 위해 ‘유럽 위원회’의 결성을 촉구했다.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보도사진’이다. [중앙포토]
학자들이 모범생 답에 충실하다면,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한 기자들은 다른 각도에서 재점검한다. 읽는 맛은 당연히 뒤쪽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편. “그럼에도 역사는 불가피하게 현재의 이론에 근거해서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검토함으로써…” 캠브리지대 교수 리처드 J 에번스는 학문 노동에 충실하다. 이어지는 기자 해리엇 스웨인의 답은 간결하다. “역사에 대한 견해는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된 적 없다. 그 점에서 역사는 ‘덧씌워진 양피지 사본’이다.”



‘역사의 종언은 가능한가’ 편도 학자·기자 둘은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기자 해리엇 스웨인과, 문제작 『지하드 대 맥월드』의 저자 벤저민 바버는 역사의 종언을 언급한 후쿠야마가 레이건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그의 지론에는 자유주의 이념성향이 짙게 묻어있음을 지적한다.



그와 달리 동서고금 어느 때나 역사의 종말이란 개념은 생각치도 못했다. 고대 그리스 사람도 그랬고, 14세기 이슬람의 위대한 역사학자 이븐 할둔 역시 인간역사란 돌고 돈다고 봤다. 역사가 일직선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은 18세기 등장한 뒤 “역사는 이성의 행진”이라는 철학자 헤겔에 이르러 극단을 달린다. 그 연장에서 나온 역사의 종언론은 미국 패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팍스 아메리카란 영원한 평화가 아니며, 일시적인 패권에 불과한데, 이를 혼동하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입구가 아니라 지옥의 전주곡”(348쪽)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이다. 시대가 지도자를 만들어내는가, 그 반대인가를 둘러싼 논쟁인데, 나치 등장을 예견한 선견지명과 함께 국민을 안심시키는 감성적 지성을 겸비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과, 독일 통일을 주도한 비스마르크 등이 집중 거론된다. 비스마르크의 경우 뜻밖에 자신을 시대 흐름의 대변자로 여겼다. “하느님이 역사의 무대를 가로지를 때 그의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자신의 리더십이라는 말도 했다.



시대가 먼저라는 말인데, 그래서인지 『역사란 무엇인가』의 E. H. 카의 경우 “위대한 사람을 초(超)역사적 존재로 보는 견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자들도 지도자란 말 자체를 극력 기피한다. 결국 학문 노동의 답답함을 깨기 위해 등장한 이 책은 다시 ‘과학주의와 작은 학문’의 틀 안에 들어간 셈일까? 니체라면 적지 아니 실망할 듯하다.



이 책의 또 다른 한계. 어쩌면 그렇게 철두철미 서구중심주의의 틀 안에서 놀고 있을까 싶다. 현대역사학의 큰 주제가 탈(脫)서구인데, 이 책을 보면 20세기 중반 이후 지식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느낌마저 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오리엔탈리즘 문제, 서구문명의 자궁이자 뿌리로 ‘선전’돼온 고대 그리스문명의 거짓 신화에 대한 오랜 논의와 축적은 전혀 언급치 않는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못지않게 『손자병법』과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등 동양고전이 자주 인용되지만, 그런 시늉이 전부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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