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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갈릴레오·뉴턴의 ‘스승’은 이름 없는 직공·선원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 동아시아

939쪽, 3만6000원




과학사에선 17세기를 서양 과학문명의 변곡점으로 본다. 갈릴레오·뉴턴 등이 이 시기에 활약하며 과학혁명을 이뤘다. 지동설과 만유인력이 비로소 인간의 지식창고에 입고됐다. 서양인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비로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즉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과 물질문명을 발달시켜 세계사를 주도하게 된다.



그런데 일본의 저명한 과학저술가이자 비판적 지식인인 지은이는 14~16세기 르네상스(고전문예 부흥운동)와 17세기의 과학혁명 사이의 골짜기에 해당하는 16세기에 문화혁명이 있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16세기 고상한 지식인이 아닌 직공과 기술자, 선원 등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이뤘으며 그러한 업적이 다음 세기 과학혁명의 씨앗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16세기에 민중과학의 르네상스가 펼쳐졌다는 것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당시엔 직공·기술자와 함께 상인도 민중과학을 이끌었다. 도구는 대수학이었다. 16세기 엘리트들의 자식들이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면 상인들의 자식은 산수학교에 다녔다. 산수학교에선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아닌 속어(지역 언어)로 셈을 배웠다. 교재는 피보나치가 만든 셈본이었다. 대학 아카데미즘에서 무시당했던 책이다. 하지만 상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16세기 대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성벽을 축초하는 데 쓰였던 16세기 이탈리아 기술자 아고스티노 라멜리의 ‘여러 가지 정교한 기계’ 그림. 인력으로 작동되는 크레인, 톱니바퀴와 겹도르래가 사용되었다. [동아시아 제공]
17세기 과학혁명의 핵심인 지동설과 중력 개념도 16세기 기술자들이 앞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지구를 ‘자기운동을 하는 거대한 자석’이라고 본 윌리엄 길버트는 17세기 영국 과학혁명의 1인자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제공한 사람은 16세기에 따로 있었다. 20년간의 뱃사람 생활을 접고 항해용 기구를 만들며 생계를 잇던 런던의 기술자 로버트 노먼이었다. 그는 항해 중의 경험을 통해 북극을 가리키는 자침의 끝이 항상 아래를 기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먼이 이를 발표하자 학계에선 무시했다. 하지만 그는 연구할만한 교양이 없다고 무시당하던 사람들도 경험과 실증을 통해 과학에 한몫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6세기에는 군사혁명도 일어났다. 대포가 전투에서 주력 무기로 사용됐다. 학자가 아닌 군인과 기술자가 대포의 과학적 연구를 주도했다. 이들은 대포를 잘 쏘는 방법을 궁리하다 역학과 기계학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았다. 이는 다음 세기 갈릴레오에게 전달돼 자유낙하운동과 포물선운동의 엄밀한 수학적 이론을 만드는 바탕이 됐다. 달리 말하면, 갈릴레오는 권위 있는 고대 학자들이 쓴 라틴어 책 대신 기계공과 직인의 실제 생산활동에 눈을 돌림으로써 신과학의 서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16세기의 상인·직공·기술자·선원들의 과학활동은 라틴어를 구사하던 엘리트의 지식독점을 깨뜨렸다. 그러면서 이론적 연구와 실험적 연구의 결합이 촉진됐다. 지은이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16세기 문화혁명이라고 부른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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