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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밴쿠버] 이승훈이 1바퀴 추월하는 순간, 메달 색깔 달라졌다

스벤 크라머가 실격 판정을 받는 순간, 이승훈의 아버지 이수용(52)씨는 몸에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행복을 한꺼번에 주시다니…. 전율을 느꼈습니다.”



“1만m가 자신있다더니 … 빈말이 아니었구나”

사실 은메달만으로도 이승훈의 가족은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지난 14일(한국시간) 5000m 은메달에 이어 24일 처음으로 아시아가 아닌 세계 무대 경기를 치른 1만m에서도 메달을 획득한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크라머가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금메달은 이승훈의 몫이 됐다. 서울 중구 예장동의 친척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이승훈의 가족은 서로 껴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누나, 1만m가 절정이야”=이승훈은 밴쿠버로 향하기 전 가족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5위만 할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뒤 기록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혹시나 가족에게 헛된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어머니 윤기수(48)씨는 “아시아 대회에 나갈 때만 해도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아시아 최강자인 히라코 히로키(일본)를 넘겠다’고 하던 애가 올림픽을 앞두고는 ‘크라머 같은 애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라고 다른 말을 하더라. 메달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14일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뒤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이승훈의 누나 이연재(24)씨는 “5000m가 끝난 뒤 ‘수고했다’고 했더니 승훈이가 ‘1만m가 절정이야’라며 웃더라. 이제 보니 빈 말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약속을 지킨 아들=힘겨웠던 시절을 견뎌냈기에 기쁨은 더했다. 아버지 이씨는 이날 고이 간직해뒀던 아들의 일기장을 꺼내며 이승훈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서울 리라초등학교 4학년이던 1998년 4월 8일. 이승훈은 일기에 ‘2년 만에 처음 타 보는 스케이트다. 저기서 타는 아이들보다 못 타는 일은 없어야 할 텐테’라고 적었다.



96년 이승훈은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미래를 위해 링크를 멀리한 채 2년간 ‘지상훈련’만 했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 부모는 “공부를 하는 게 어떨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승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빠, 엄마. 나는 스케이팅이 좋아. 정말 열심히 할게.” 그러고는 일기장에 ‘이제 나는 문제가 없다. 김동성 형처럼 쇼트트랙 강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 10여 년 뒤, 아들은 약속을 지켰다. 어머니 윤씨는 “첫 세계 대회였던 만큼 경험이 없었을 텐데 너무 고맙다. 아들이 한국에 돌아오면 꼭 껴안아주고 싶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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