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삶의 향기] 장구에 대한 명상

며칠 전 장구를 사러 국악사에 갔다. 전통 연출을 하니 장구와 함께 사는 셈인데,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다. 잘 아는 주인장이 왜 사느냐고 묻기에 그냥 웃었다. 오지랖 넓은 그 얼굴에 궁금증이 퍼졌다. 마지못해 어머니 드릴 거라 했더니, 금세 비약해 “모친께서 혹시 초야에 묻혀 있는 명인이 아니시냐”고 물었다. ‘초야’란 말에 또 피식 웃었다.



어머니는 다섯 살 때 길을 잃었다. 못자리에 새 쫓으러 갔다가 혼자 돌아가다 이 산을 넘어라 했는데, 저 산을 넘은 거였다. 산 너머가 집인데, 그날은 넘어도 넘어도 산이었다. 아니다 싶어 다시 넘은 만큼 뒤로 넘었는데, 그냥 어두운 들이었다. 동네는 난리가 났다. 호랑이가 물어갔다고, 풍물을 울리며 밤새 초야를 뒤졌다. 외할머니 말인즉, “물어간 호랭이가 놀래서 못 먹으라고 겁나게 세게 치고 찾았단다.” 그렇게 세게 치는 통에 장구통이 깨진 것이다.



어린 어머니는 저 산을 넘어도 또 산일 거란 생각에 어둠 속에서 멈췄다. 그때 다행히, 아! 몹시 다행히, 멀리 물레방아 소리가 들렸고 외딴집을 찾았다. 외할아버지 이름을 대고 잠들었는데, 깨보니 외할아버지가 계셨다 한다. 마을은 장구를 다시 마련해 관습대로 대소사에서 울렸는데, “세상이 바뀌고 노는 물정이 달라져” 방치되다 몇 해 전 부서진 것이다. “넌 장구 빚이 있어야, 나 죽기 전에 하나 사다 놔라.” 구순을 넘긴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당부했고, 호랑이해라고 TV에 호랑이가 나오자 어머니가 내게 부탁한 것이다.



장구를 사놓고 보니, 요샛말로 ‘엣지’ 있는 S라인이다. 옛사람들도 그리 생각했는지 허리가 잘록하다고 세요고(細腰鼓)라고 했다. 장구를 세워놓고 보면 꼭 모래시계 같다. 시간을 담고 있는 자태다. 그 시간을 꺼내 대나무 채로 재단하는 것을 박(拍)이라고 하고, 그 박 위에 서는 것을 악(樂)이라 한다. 이럴 때 ‘지팡이 장(杖)’자에 ‘두드릴 고(鼓)’자를 써서 ‘장고(杖鼓)’라 하는데, 말하자면 ‘악(樂)의 축’인 것이다.



그러면 ‘장구’란 말은 사투리인가? 아니다. 한 쪽은 노루가죽, 한쪽은 개가죽을 쓰기에 ‘노루 장(獐)’자, ‘개 구(拘)’자를 써 ‘장구(獐拘)’다. 노루는 제가 뀐 방귀에 놀라서 10리를 도망가는 놈이다. 그러니 평소 얼마나 두근두근 거리고 살겠는가. 그래서 두둥! 두둥! 울림이 좋은 모양이다. 개 또한 울음으로 먹고사니 보통 울림이 아닌 게다. 이 신통한 울림이 어울림을 만든다. 장구만 치면 사람들이 에워싸 너와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정월이면 ‘지신밟기’, 꽃 피면 ‘화전놀이’, 백중이면 ‘호미씻이’, 추수하면 ‘단풍놀이’, 갈 봄 여름 없이 울리며 어울렸다. 그런즉 장구는 ‘삶의 축’이었다.



반주용 장고가 아니라 어울림을 도모할 풍물 장구를 샀다. 가죽이 두꺼운 것을 택해 막걸리를 먹였다. 전분이 가죽의 모공에 스미면 질기고 부드러워진다. 가죽이랑 막걸리를 나눠 먹었더니 얼큰하고 좋았다. 주말에 외갓집에 가져갈 생각이다. 마침 보름이라 남도 들판의 쥐불놀이를 보게 될지 모른다. 그 들불처럼 외가마을에 다시 풍물소리가 번졌으면 좋겠다.



진옥섭 KOUS 예술감독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