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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비실이’배삼룡이 떠나며 남긴 것

23일 타계한 배삼룡씨의 40년 지기인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24일 조문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두 사람은 1960~70년대 안방극장을 누볐다. [연합뉴스]
2007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에는 1980년대 초반 슬랩스틱 코미디의 끝자락이 묘사된다. 신군부의 사회정화 조치에 따라 ‘저질 코미디’로 낙인 찍힌 희극인은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난다. 작가 김연수는 “여러 인물이 복합됐지만 영감을 얻은 건 배삼룡씨였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배삼룡은 80년 ‘출연 규제’ 1순위로 찍혀 미국으로 건너갔다. 3년 뒤 국내 복귀했지만, 70년대의 영화(榮華)는 더 이상 없었다.

그가 영면한 23일. 시대를 주름잡던 코미디언이 떠났건만, 빈소는 예상외로 한산했다.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취재 기자 100여명이 진을 쳤어도, 조문객은 손꼽을 정도였다. 저녁이 돼서야 낯익은 얼굴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조문만 하고 돌아섰고, 빈소에서 겸상을 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료애’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고인의 활동 공백이 오랜 게 큰 이유일 테다. 사업 실패 등 개인적 부침(浮沈)에 따른 허물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헛헛한 풍경이었다. 한때는 그를 스카우트하느라 백지수표가 난무했는데,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체납 병원비 2억원뿐. 복도엔 방송·사업 등에서 일가를 이룬 개그맨들의 화환이 즐비했다. 흑백 TV 시절, 개다리춤을 추며 전 국민을 웃기던 고인을 보며 코미디언의 꿈을 꿨을 후배들이다.

고인은 병상에서도 무대를 소망했다. “나이든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설사 회복했다 해도 TV 복귀가 쉽진 않았을 것이다. 80년대 퇴출은 ‘사회정화’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상업적 가치가 없어서다. 빈소의 기자들이 “유재석·강호동이 조문 올 것인가”에 더 관심을 보일 정도로, ‘웃음의 코드’가 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젊은 세대는 ‘구르고 넘어지는 비실이’를 보며 위안 삼지 않는다. 코미디의 지향점 또한 ‘온 가족의 웃음’에서 ‘젊은 세대끼리의 공감’으로 옮겨갔다. 배삼룡을 보내는 중·장년층의 상실감이 큰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고령화 사회라지만, 정작 그들을 웃기고 울리는 코미디는 한 편 없다. ‘천재만이 할 수 있는 바보 연기’로 나보다 모자란 광대 노릇을 너끈히 하던, 그 시절 비실이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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