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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서흔남(徐欣男)을 아시나요?

남한산성 지수당 옆 연못가에 크지 않은 묘비가 서 있다. ‘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서공지묘(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徐公之墓)’라 적혀 있다. 원래 광주시 병풍산에 있던 비석을 이 자리로 옮겨 온 것이다. 조선조 정이품에 해당하는 동지중추부사 서흔남의 묘비다.

서흔남(徐欣男). 그는 원래 성도 이름도 없이 남한산성에서 대장장이와 허드렛일로 살아가는 천민이었다. 이름 없는 한 민초가 정승 반열에 오르는 이 기막힌 인생역전이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자세히 재연된다. 임금 인조는 청군에 쫓겨 남한산성에 갇힌다. 어떻게 하면 성 밖으로 격서(檄書)를 내보내 성안에 갇힌 군주의 고초를 만방에 고하고 삼남의 군사를 동원해 청군을 물리칠 수 있을까.

“임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격서가 문장이 좋더구나.

(병조판서) 이성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 들어온 자는 상해서 다시 내보낼 수 없고, 내보낸 자 중에는 돌아오지 않는 자가 허다하니, 품계 없는 천한 군병에게 어찌 유지를 맡기오리까.

-품계 높은 사대부는 길을 몰라 갈 수 없고, 품계 없는 군병은 못 믿어서 못 보내면 까마귀 편에 보내려느냐.

-전하, 신들을 죽여 주소서.

-경들을 죽이면 혼백이 날아가서 격서를 전하겠느냐.”

사대부 정치인들은 화친이냐 결사항전이냐로 줄기차게 입싸움만 벌이지만, 임금의 모병 격문을 전달할 연락병 하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임금은 얼마나 좌절했을까. 오죽 절망했으면 경들을 죽이면 혼백이 날아가 격서를 전할까 했을까. 결국 임금의 격서를 품에 안고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전국을 헤집고 다니며 군사동원 역할을 맡은 게 소설 속의 민초 날쇠다. 삼전도의 치욕을 거친 뒤 임금은 고마움의 표시로 날쇠에게 성과 이름, 그리고 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다. 이 사람이 서흔남이다.

남한산성의 날쇠, 서흔남 스토리에서 우리는 정치를 잘못하면 결국 죽는 것은 백성, 이름 없는 민초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나마 날쇠는 임금이 알아서 성과 벼슬까지 주었고 역사에도 이름을 남겼지만, 힘없는 민초들은 나라를 개판으로 만든 정치인들을 향해 소리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스러져 간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와 장시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물었다. 여성으로서, 지성인으로서 별로 내키지 않을 정치권력에 어째서 당신은 그토록 집착하는가. 시오노는 말했다. “얼마 전 로마에서 한 전시회가 열렸다. 로마제국 멸망 시 외족이 쳐들어왔을 때 로마 서민들이 무엇을 숨겼는가를 보여주는 특이한 전시회였다. 전시품들은 고작 밥짓는 냄비와 그릇 등 보잘것없는 가재도구였다. 정치인 상류층은 이미 보따리를 싸 도망친 지 오래지만 서민은 가재도구 챙기기에 바빴다.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은 서민이고 죽는 것은 백성이다. 정치란 그만큼 중요하다. 내가 역사서를 쓰는 중요 요인이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는 지도자의 첫째 자질을 위기관리 능력으로 꼽고 이 일만 끝내면 언제나 그만둘 수 있다는 결단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주변의 정치를 보자. 수십만의 청년 실업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고 나아질 것이라는 경제는 아직도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난국에 국회는, 여당은, 정치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끊임없는 자기 주장과 지치지 않는 무작정 반대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수도분할이라는 명백한 비효율·비능률을 제거하고 과학기술의 자족도시로 가면 되는 너무나 쉬운 길을 두고 교언영색으로 뒷다리를 잡고 있다. 이런 정치를 하고서도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인가.

이미 결정된 사안이지만 당장의 인기를 생각지 않고 국가백년대계를 생각해 수도분할 이것만은 안 된다고 밀어붙일 수 있는 결단의 지도자가 진정한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지도자다. 국가의 성장동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어려운 시절에 대비할 줄 아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치인이 진정한 지도자다. 헛된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고 계파 보스의 입에 따라 자신의 주장이 결정되는 일이 없는 그런 정치 풍토라야 민주시대의 격조 높은 정치다. 이런 정치, 이런 지도자가 줄을 잇고 함께 뭉쳐야만 백성이, 서민이, 민초가 잘못된 정치의 볼모가 되어 속절없이 희생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아니 줄어들 것이다.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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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