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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빚 무서운 줄 모르는 정부

우리는 어릴 때 ‘에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아기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자주 쓰던 말이었다. 그러면 신통하게도 아기들은 울음을 뚝 그치곤 했다. 에비라고 말하는 어머니나, 울음을 그치는 아기들도 에비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런데도 두려운 존재였는지 효과는 만점이었다. 우리 경제에도 이런 에비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정체를 모르면서도 울음을 뚝 그치게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가계 부채나 나라 빚이 에비였으면 한다. 특히 위정자들이 빚을 무서워했으면 좋겠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정부는 빚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기업 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하는 건 잘못’이라고 못 박는다. 국제기준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며 국민을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이러니 정부 관료가 딴말 할 순 없다. 가계부채와 국가채무 모두 크게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호언한다. 가계부채 상환 능력은 다른 나라보다 낮고, 나라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세계 최고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담보로 잡은 주택 가격보다 대출해준 돈이 절반에 못 미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다른 나라의 반밖에 안 된다는 걸 애써 강조한다. 반면 한은 총재는 정부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며칠 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부채 문제”라고 했으니 말이다.

나는 한은 총재 편이다. 정부의 호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다. 의심 가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라 빚에 대한 정부 산술과 일부 전문가들의 산술이 너무 다르다. 2008년 국가채무는 적게는 308조원, 많게는 1439조원이라고 한다. 무려 5배가량 차이 난다. 최소치는 물론 정부 측 자료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면 정확한 액수는 그 중간 어디쯤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또 대통령은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안 된다지만, 그럼 정부는 나랏돈으로 해야 할 일을 왜 공기업에 떠넘겼는지 캐묻고 싶다. 4대 강 사업이 그렇다. 비용의 절반을 수자원공사가 부담하도록 강요하다시피 했다. 친서민 정책이라며 그토록 자랑하는 보금자리 주택사업도 재정으로 해야 할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토지주택공사가 맡아서 하고 있지 않은가. 똑같은 사업을 정부가 하면 국가부채고, 공기업이 빚내서 하면 국가채무가 아니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이 때문에 공기업이 부실해지면 정부는 손 놓고 방관할 것인가. 국고를 털어 지원해줄 게 뻔하다. 그렇다면, 계면쩍어서라도 공기업 부채를, 적어도 일부라도 국가채무에 산입하는 게 맞다. 그럼으로써 제대로 관리하는 게 정부의 올바른 자세지 싶다. 국제기준과 설령 어긋나더라도 말이다.

더 걱정되는 건 지금부터다. 빚 내서 대형 사업 벌이겠다는 마인드가 확고한 듯해서다. 당장 4대 강, 세종시, 새만금 등 3대 국책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 돈만도 무려 55조원이다. 녹색 뉴딜, 지역발전, IT·소프트웨어 진흥은 물론 보금자리주택과 취업 후 학자금 대출 등 굵직한 복지지출도 대기 중이다. 지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긴 빚 무서워하지 않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歲計)잉여금이 생겨도 빚을 갚기는커녕 저소득층 지원 등 생색 나는 일에 쓰기 바빴다. BTL, BTO 등 이름도 요상한 민자 제도를 고안해 민간에 국책사업을 떠넘기는 잔꾀도 썼다.

개인이든 나라든 빚은 없는 게 장땡이다. 빚지더라도 ‘빚은 에비’라는 마음가짐은 간직해야 한다. 빚 때문에 나라 전체가 망할 뻔했던 경험을 겪었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긴 엄밀히 따지면 정부가 빚을 겁낼 이유는 없다. 앞당겨 쓰고 다음 정부로 빚을 떠넘기면 된다. 국민에게 전가하는 방법도 있다. 세금을 더 걷거나 벌금을 올리면 된다. 농산물 개방한다고 농특세를, 공교육 살린다고 교육세를, 균형발전 때문에 종부세를 거둔 전례도 허다하다. 다음 정부와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빚 문제와 정면 승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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