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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이 그린을 더 푸르게 한다

설날 아침,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아!’ 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 출전한 성시백과 이호석이 한데 엉켜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골인 지점을 약 20여m 남겨놓은 상황에서 두 선수는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다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야 두 선수가 어릴 적부터 치열한 ‘라이벌’이었단 사실을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99>

골프에도 ‘라이벌’은 존재한다. 박세리와 김미현이 대표적이다. LPGA 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 가운데 1세대 격인 두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옹다옹하는 사이였다. 나이는 두 선수 모두 1977년생으로 같지만 77년 1월생인 김미현은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77년 9월에 태어난 박세리는 학년은 빠르지만 같은 해에 태어난 김미현을 ‘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김미현은 한 학년 아래의 박세리가 선배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을 언짢아했다. 대회 때마다 두 선수의 신경전이 계속됐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너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경쟁심까지 발동했다.

두 선수의 경쟁은 미국 진출 이후에도 계속됐다. 박세리가 LPGA투어에 진출한 것은 98년, 김미현이 미국에 건너간 것은 이보다 1년 늦은 99년이다. 김미현은 박세리가 데뷔 첫 해부터 메이저 대회 2승을 거둔 것을 확인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라는 경쟁심이 발동했던 것은 물론이다.

“키도 작은 게 여기까지 뭐하러 왔어. LPGA투어가 아무나 오는 데인 줄 아나.”
박세리 측근의 이 한마디에 김미현은 속으로 칼을 갈았다. 이후 박세리·김미현, 두 선수의 활약상은 골프팬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이다. 박세리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낸시 로페즈-안니카 소렌스탐의 계보를 잇는 최고 여자골퍼의 반열에 올랐다. 김미현 역시 작은 키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LPGA투어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라이벌 김미현이 없었다면 박세리가 그렇게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맞수 박세리가 없었다면 김미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박세리와 김미현은 이제 예전보다 훨씬 절친한 사이가 됐다. 박세리는 이제 스스럼없이 김미현을 ‘언니’라고 부른다. 김미현 역시 박세리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한 시대를 함께하면서 비록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을 펼쳤지만 그 치열한 싸움 끝에 이제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박세리-김미현의 라이벌 계보는 2010년 LPGA 투어에선 신지애(22)-미셸 위(21)의 대결 구도로 이어진다. LPGA 투어에서 2년째를 맞는 한 살 차의 두 선수는 올해도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펼쳐야 한다.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신지애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잡초’라면 미셸 위는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라난 ‘화초’에 가깝다. 그러나 미셸 위 역시 프로 데뷔 이후 혹독한 시련을 겪은 끝에 신지애 못지않은 기량과 정신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박세리와 김미현의 경우에서 보듯 라이벌 간의 선의의 경쟁은 보약이나 다름없다. 쇼트트랙의 성시백과 이호석도, LPGA 투어의 신지애와 미셸 위도 예외는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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