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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

지지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두 개의 전선(戰線)에 휘말린 사나이.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 그리스의 총리인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8)의 요즘 처지다. 그는 재정적자와 전쟁을 벌이면서 동시에 당내 권력투쟁도 벌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인 재정적자를 2012년까지 유럽연합(EU) 기준치(3%)까지 줄여야 한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 당장 실현 가능성을 보여줘야 올해 안에 500억 달러(60조원)를 조달해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갚을 수 있다. 그는 공무원 정리해고 카드를 내놓았다. 사회주의자인 그의 지지 세력인 노동계가 들고 일어날 기세다. 당내 반발도 거세다.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 내 좌파 세력은 그를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했다. 사회주의 이념과 정책을 버린 ‘변절자’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당내 좌파 진영은 2007년 파판드레우를 정치적 궁지에 몰아넣었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리스 사태 해결나선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유럽 정치계에서 파판드레우는 ‘정치 플레이어’로 통한다. 큰 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할 줄 안다는 얘기다. 실제 그는 경기침체에 따른 사회불안을 등에 업고 지난해 10월 6일 집권한 직후 이전 정권의 분식회계를 폭로했다. 미국 골드먼삭스와 외환 파생상품 거래를 일으켜 은폐한 공공부채와 재정적자 실상을 그대로 공개했다. 언젠가 밝혀질 속살을 먼저 드러내 주도권을 쥐는 전술이다. 자연스럽게 위기 책임은 전임 정권(우파 신민주당)에 돌아갔다. 요즘 그의 지지율은 70%를 넘나들고 있다. 그는 지난주 말(16일)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이전 정권의 분식회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스 출신 영국 정치평론가인 타노스 디만디스는 지난주 개인 블로그를 통해 “파판드레우가 이전 정권을 공격하는 수법으로 긴축정책 때문에 발생한 집권당 안팎의 불만을 다스리려고 한다”며 “하지만 그가 언제까지 두 개의 전선에서 승리를 이어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파판드레우의 처지가 대공황 시기 영국 총리였던 램지 맥도널드와 비슷하다”고 평했다. 맥도널드는 노동당 출신으로 대공황 와중에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긴축재정을 쓴 인물이다. 파판드레우의 긴축정책 이면에도 유로(euro)화 가치 유지라는 목적이 있다.

영국 맥도널드의 긴축정책은 사회적 반발로 이어졌다. 월급을 받지 못한 해군 병사들이 부대 소집에 응하지 않고 시위를 벌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끝내 노동당도 맥도널드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노동당을 탈당해 보수당과 이른바 거국 내각을 꾸렸다.

하지만 1931년 영국 금본위제는 붕괴했고 파운드화 가치는 추락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 경제가 파운드 가치라는 족쇄에서 풀려났다”고 촌평했다.

이후 영국 정치인들은 다급한 순간엔 화폐가치를 포기하고 실물경제를 선택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 9월 16일의 파운드화 평가절하다. 당시 영국의 경상수지와 재정은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파운드화가 고평가됐기 때문이었다. 유럽 국가들이 단일통화를 만들기 위해 환율변동을 3% 내에서 막자고 약속(유럽환율메커니즘·ERM)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입맛대로 파운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파운드 가치가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지 소로스 등이 공격에 나섰다. 존 메이저 당시 총리는 처음에 환율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끝내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인정하고 손을 들었다. 당시 영국 금융계는 “파운드의 신뢰가 추락했다”며 그날을 ‘블랙 웬즈데이(수요일)’라고 불렀다. 반면 산업계는 “수출 경쟁력이 되살아났다”며 ‘화이트 웬즈데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리스 집권 사회당의 좌파 세력들도 유로화 포기를 주장하고 있다. 대신 2001년 유로 채택 이전까지 썼던 옛 화폐인 드라크마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드라크마의 가치가 그리스 경제 실상에 따라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고 실물경제도 되살아날 것이란 주장이다.

파판드레우가 당내 좌파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스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집권당 좌파의 주장이 국제 신인도를 붕괴시킬 수 있다며 지지하지 않고 있다. 되레 파판드레우가 제시한 긴축 일정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런 지지를 이용해 파판드레우는 노동계와 당내 반발을 견제하고 있다.

파판드레우는 고강도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등을 향해서는 노동계와 당내 반발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최근 그는 “너무 가혹한 긴축은 그리스의 좌절(유로화 포기)을 유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단 유럽연합 쪽은 그의 계획을 승인했다. 최근 위기감이 잦아든 이유다. 그리스 국민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판드레우가 정치적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이런 조짐만 보여도 헤지펀드 등 이른바 글로벌 시장의 ‘늑대 무리(Wolf pack)’가 공격(그리스 채권·주식 투매)하고 나설 것이다. 시장이 요동치고 시위가 거세지면 파판드레우는 대공황 시기 영국 맥도널드나 92년 메이저 총리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유로 시스템이 최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유로화가 파판드레우의 정치 운명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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