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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재정개혁, 겨우 시간표 나왔을 뿐”

최근 그리스 아테네를 찾았다. 우리 템플턴에셋매니지먼트가 몇 년 전에 투자한 그리스 기업들의 경영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그리스가 이머징 시장으로 취급되던 시절에 아테네증권거래소에서 주식 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일이 일어났다. 1981년 그리스는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20년 뒤인 2001년에는 유럽의 단일 통화인 유로(euro)를 채택했다. 또 3년 뒤인 2004년 8월에는 여름 올림픽을 열었다.

마크 모비우스의 이머징 투자 이야기

나는 아테네 올림픽을 현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 이전까지 올림픽 게임을 직접 찾아가 구경한 적이 없었다. 올림픽의 고향인 아테네에서 열리는 스포츠 제전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일 자체가 내게는 전율이었다. 아테네가 1896년 이후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근대 올림픽을 유치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그러나 2004년 당시만 해도 그리스가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잘 치러낼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경기가 열리는 아테네 등의 도로와 통신망 등 인프라가 시원찮았다. 대기오염도 심각했다. 그밖에도 여러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의 자금력을 걱정했다. 인구가 고작 11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110억 달러(약 13조2000억원)에 달하는 올림픽 비용을 무리 없이 조달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 시절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해냈다. 아테네 올림피아드에 정상적으로 성화가 불타 올랐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에셋매니지먼트 회장 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
그리스 인프라는 올림픽 덕분에 눈에 띄게 개선됐다. 현대적인 공항이 건설됐다. 낡아빠져 불편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던 옛날 공항을 경험한 나 같은 사람에게 신공항 건설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은 이것만이 아니다. 경전철도 새로 건설됐다. 아테네 교외 철도망이 현대화됐다. 신공항과 아테네 위성 도시들이 교외 철도망으로 연결됐다. 아테네 내부에 순환도로도 깔렸다. 오랜 역사가 숨쉬고 있는 아테네 중심지 거리도 새롭게 디자인됐다.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도로로 바뀌었다.

이런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그리스 경영자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들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그리스가 막대한 부채 등 많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었다. 사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 따르면 그리스 공공부채는 한 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다. 예산 적자 규모도 2011년에는 GDP의 12% 수준에 이를 듯하다.

집권당인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은 2010년 벽두에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과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신용디폴트스와프(CDS)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그래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폴란드·페루보다 높다. 이 신용파생상품은 그리스 정부에 돈을 꿔준 사람이나 회사가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해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그리스 정부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다. 가격이 높으면 그만큼 디폴트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EU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펄쩍 뛰었다. 나는 점심 식사를 같이한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그리스는 EU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끝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리스는 비대한 관료 조직과 막대한 복지예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겨운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 해결 방안은 아주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중도 좌파인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12%인 재정적자를 2012년 말까지 EU 기준인 3%로 줄이기로 했다.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게 기본이다. 달리 말해 세금을 더 걷고 공무원을 정리해고 한다는 것이다.

최근 EU 관료들이 브뤼셀에서 아테네로 급파됐다. 그리스 정부의 세입과 세출을 정확히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조사단은 그리스 정부의 숫자놀음에 격분했다. 그리스 정부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와 스와프 거래 등을 통해 장부상 부채를 줄이는 방식으로 EU에 보고했다. 정부가 분식회계를 저지른 셈이다. EU는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통계청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법과 시스템, 관행을 만들라고 그리스 쪽에 요구했었다.

지난주 EU 정상들과 재무장관들이 잇따라 회의를 열어 그리스 재정적자 감축 계획을 지지했다.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 가운데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허리띠를 졸라매 재정적자를 계획대로 줄이는 일은 수월하지 않다. 성공 여부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방안도 없다. 시간이 흘러 실제 이행 결과를 따져봐야 그리스가 제대로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 달러 등과 견줘 유로화 가치가 높아 그리스 수출이 타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나라 비즈니스 리더들 가운데는 그리스가 가진 창의력과 무역 수완 등을 활용해 글로벌 차원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있다. 보석·장식품 전문 업체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기업은 보석과 시계, 패션 장식품을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25개 나라에 소매점 380곳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이 됐다. 합리적인 값을 받고 파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뮤라노 섬에서 생산된 유리에 은장식을 곁들이거나 세라믹 재질로 만들어진 시계 등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성공하기도 했다. 귀금속과 시계 외에도 핸드백과 벨트·선글라스 등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지금 그리스 사태 결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리스의 노력이 실패할지 아니면 성공할지 말하기 이르다는 얘기다. 조만간 그리스 사태를 집중적으로 되짚어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때에는 그리스인들이 제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재정적자를 얼마나 줄였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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