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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황제’ 두웨셩이 평생 사랑한 멍샤오둥

둥황(冬皇) 시절의 멍샤오둥. 김명호 제공
1917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에 맞춰 종합공연장 ‘대세계(大世界)’가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 문을 열었다.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몰려들었지만 제대로 된 경극 배우들은 2년이 지나도 대세계의 무대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설립자 황추주(黃楚九)는 직접 경극 공연장들을 누비고 다녔다. 11월 말 성황묘(城隍廟)의 소극장에서 12살짜리 여자애를 발견했다. “얼굴을 보는 순간 눈알이 녹아 내리는 줄 알았다. 남장은 더 아름다웠다. 목소리와 무예(武藝)도 일품이었다.” 다음 날 어린 소녀를 찾아가 갖은 예의를 다 갖췄다. 멍샤오둥(孟小冬)이라는 이름도 예뻤다. 초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53>

‘창업의 귀재’였던 황추주의 눈은 정확했다. 대세계의 경극 공연장은 연일 관객들로 미어터졌다. 멍샤오둥은 12월 한 달간 39차례 무대에 올랐다. 13일 밤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공연이 끝나자 낯선 사람이 꽃을 들고 무대 뒤로 찾아왔다. 나이는 30 남짓, 삐쩍 마르고 창백한 얼굴에 두 귀가 유난히 컸다. 단정히 빗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움켜쥐더니 더듬거리며 뭐라고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공연이 있는 날마다 싱거운 짓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못 생기고 괴상하게 생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평소 잘 웃지 않던 멍은 폭소를 터뜨렸다. ‘상하이 황제(皇帝)’ 두웨셩(杜月笙)과 둥황(冬皇) 멍샤오둥의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멍샤오둥은 2년여를 상하이에 머물렀다. 비밀결사 청방(靑幇)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두웨셩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제일 좋은 좌석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설설 기었지만 멍은 두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심부름은 물론이고 뭐든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사람 같았다.

상하이를 떠난 멍샤오둥은 부모와 함께 푸젠(福建)을 거쳐 필리핀의 섬들을 떠돌아 다녔다. 한커우(漢口)에서는 몇 년 후 두웨셩의 네 번째 부인이 되는 야오위란(姚玉蘭)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친자매처럼 지냈다. 가는 곳마다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다. 어린 시절 경극 배우였던 할아버지 멍치(孟七)가 자주 하던 “우리는 천하디 천한 예인들이지만 왕공귀족이나 서민 할 것 없이 우리의 공연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1950년 가을 멍샤오둥(왼쪽)과 두웨셩의 결혼기념사진. 멍은 43세, 두는 63세였다.
1925년 6월 멍샤오둥은 베이징으로 진출했다. 공연장이 있는 첸먼(前門) 일대는 “둥황 만세”를 외쳐대며 몰려든 청년들 때문에 허구한 날 인산인해였다. 멍의 사진을 걸어 놓은 사진관들은 유리창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해 가을 청방의 두령 중 한 사람인 황진룽(黃金榮)의 부인 루란춘(露蘭春)이 염색집 아들과 눈이 맞아 도망친 사건이 발생했다. 잡히면 물고기 밥이 되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갈 일이었다. 멍샤오둥의 집에 숨어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두웨셩이 해결을 자청했다. 부하들을 몰고 베이징에 올라온 두는 매일 멍의 집 앞을 지켰다. 다른 패거리들이 올라와 루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멍이 다치기라도 했다간 큰일이었다. 눈에 핏발을 세웠다. 멍을 만났지만 추궁 한마디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미 남의 밥그릇에 담긴 밥”이니 포기하라며 황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2년 후 멍샤오둥은 경극 배우 메이란팡(梅蘭芳)과 몰래 결혼하며 무대를 떠났다. 4년이 흘렀다. 메이란팡과 헤어지자 두웨셩이 사람을 보냈다. 상하이에서 두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대에 복귀한 멍은 1945년 9월 야오위란이 상하이를 떠나자 두에게 동거를 허락했지만 야오가 나타나자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기 직전 두웨셩은 멍샤오둥을 상하이로 빼돌렸다. 홍콩에 정착한 후 두는 건강이 악화됐다. 멍은 두에게 결혼 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1950년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 만난 지 31년 만이었다. 두웨셩은 5명의 부인이 있었지만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이듬해 8월 두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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