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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치를 뉴스 아닌 드라마에서도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의 열혈팬이었다. 주말마다 관저에서 DVD를 즐겨봤다고 한다.‘웨스트 윙’은 미국 NBC-TV에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방송됐던 TV 시리즈다. 백악관의 서관이란 뜻의 ‘웨스트 윙’은 대통령과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일상을 통해 미국 정치의 내막을 리얼하면서도 다이내믹하게 그려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2000~2003년 4년 연속 에미상 드라마 작품상을 받았고, 2001년엔 골든 글로브상 TV 부문 작품상(드라마 부문)과 남우 주연상(마틴 쉰)을 수상했다.

보고싶다!한국판 '웨스트 윙'

제작비를 모두 건지고도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등 경제적으로도 큰 수익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세계 각국으로 DVD 판권이 팔려나가고 있다.‘웨스트 윙’이 올린 성가는 이뿐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성공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정치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가 드라마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모티브가 되거나 정치인이란 직업을 가볍게 터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핵심 주제로 등장하는 본격 정치 드라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드라마를 본 뒤 참모들에게 “내가 원하던 청와대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게 묘사됐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권위주의적인 모습 없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한 인사는 “실제로 벌어질 법한 정치적 이슈들을 웨스트 윙이란 공간을 통해 실감 나게 그려낸 뛰어난 리얼리티(실제성)에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오벌 오피스(대통령의 집무실)와 참모들의 사무실이 가까이 있어 수시로 순발력 있게 의사소통을 하는 백악관 구조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한때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에, 비서관·행정관 등 참모들의 사무실은 별도 건물에 따로 떨어져 있는 청와대 구조를 웨스트 윙처럼 바꾸려는 작업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를 처음 방송한 것은 동양방송(TBC·1964년 개국, 81년 KBS에 통폐합) 라디오였다. 8·15 해방부터 5·16까지 격동의 시대를 그린 ‘광복 20년’이 방송된 게 67년이다.

이후엔 ‘공화국’ 시리즈들이 잇따라 나와 안방극장을 차지했다. 해방→6·25전쟁→자유당 정권→4·19를 거쳐 장면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그린 ‘제1공화국’(81년)을 시작으로 2005년 막을 내린 ‘제5공화국’까지, 시차는 있지만 다섯 편의 시리즈가 완성됐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 드라마 내용을 문제 삼은 당국이 제작진을 불러다 조사하는 일도 있었다. “내용이 왜곡됐다”거나 “정권을 미화했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실존 정치인이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데 부담을 느낀 연기자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방송사는 배역을 정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이외에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3김의 정치 역정을 그린 ‘3김시대’나 박동선 게이트를 다룬 ‘코리아게이트’ 같은 드라마가 정치와 권력을 다뤘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드라마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거나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분류하자면 정치 드라마라기보다 다큐드라마라 할 수 있다.

지난해엔 해고된 말단 공무원 출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시티홀’, 제작비만 200억원을 들였다는 ‘아이리스’가 화제가 됐다.
‘용의 눈물’ ‘이산’ ‘선덕여왕’ 같은 사극도 인기를 끌었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면서도 권력의 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멜로·코미디·스릴러물에 식상해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정치, 한 시대나 정권이 아닌 현재의 정치를 그린 본격 정치 드라마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대본의 문제를 꼽는다. 현 시점의 정치를 그리려면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에 대응하는 여의도 정치의 속성이나 권력의 생리를 풀어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역량을 갖춘 드라마 작가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웨스트 윙의 경우 대통령의 정치 브레인이나 백악관 스피치라이터 경력이 있는 정치권 출신들이 제작에 함께 참여했다.

작가 출신인 김한길 전 의원(3선)의 분석은 이렇다. “‘웨스트 윙’이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디테일, 탄탄한 대본에 있다. 우리 드라마 작가들은 아직 그런 디테일이 약하다. 반대로 정치 경험이 있다고 해서 대본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적 요소를 살리면서 탄탄한 디테일을 갖추려면 작가와 제작·연출자가 팀제로 움직여야 하고 그런 데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를 드라마 자체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프로듀서(PD) 출신으로 청와대 참모로도 몸담았던 고석만 전 문화콘텐츠진흥원장은 “‘웨스트 윙’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보자. ‘이건 누구고, 저건 누구고…’ 추리가 난무할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필림이지엔터테인먼트 류시형 대표도 “미국에서는 정치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지만 우리는 현실을 가져다 붙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치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은 커지고 있다는 게 방송가의 진단이다. 김 전 의원은 “본격 정치 드라마를 만들어보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며 “사실 우리 정치의 위상이 실제 이하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드라마가 실제 있는 대로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정치 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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