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전 백악관 참모도 제작 참여, 정치 속살 실감나게 묘사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은 실제 정치 전문가들이 대본 작업에 참여해 백악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웨스트 윙'을 기획할 당시만 해도 NBC 내부에선 적잖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현실 정치도 외면하는 시청자들에게 정치가 양념이 아니라 주 메뉴인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깨고 '웨스트 윙'이 장수 드라마로 세계 각국에 수출까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정치 드라마 역사 새로 쓴 미드 '웨스트 윙'

첫째는 완성도 높은 연출과 극적 재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웨스트 윙’의 기획자이자 제작·극본가였던 에런 소킨은 브로드웨이에서 탄탄한 연출과 대본 실력을 갖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1961년 뉴욕에서 태어난 소킨은 시러큐스대에서 뮤지컬 시어터(음악·춤·대사가 혼합된 연극 분야)를 전공했다. 브로드웨이에서 단역을 맡으며 밤에는 바텐더로 생계를 이어가다 자신이 연기보다는 글 쓰는 일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틈틈이 극본 작업을 했다.

첫 작품이 ‘어 퓨 굿맨’이다. 그 뒤 ‘웨스트 윙’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더글러스와 아넷 베닝 주연의 ‘아메리칸 프레지던트(한국개봉제목은 대통령의 연인)’를 선보였다. 정치를 소재로 한 작품에 관심을 보인 건 그 자신이 정치 친화적이란 점도 작용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소문난 민주당 후원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진보단체인'무브온닷오그'(MoveOn.org)의 후원자로도 활동해왔다. 이런 제작자의 특성이 '할리우드'와 '워싱턴'의 물리적·정서적 간격을 좁혀놓은 것이다.

수준급 연기진도 성공 요인이다. 대통령 역을 맡은 마틴 신은 물론이고 스피치라이터 역을 맡은 롭 로 등 출연진 대부분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배우들이다. 특히 에피소드 한 편 한 편마다 하나의 단편 영화에 버금가는 공을 들였다. 편당 제작비가 600만 달러였다니 완성도를 짐작할 만하다.

상원의원 비서실장 출신이 제작 도와
이런 요인 외에 ‘웨스트 윙’이 정치 드라마로 성공할 수 있었던 열쇠는 사실에 근접한 탄탄한 구성과 실감나는 대사들이다. 99년 시즌1이 방송되자마자 방송가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과 학계는 웨스트 윙 신드롬으로 술렁댔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같은 전직 백악관 참모들은 한목소리로 “웨스트 윙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촉발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격찬했다.

필자도 클린턴 정부 1기 때 백악관에서 일했던 친구에게 "드라마가 실제 백악관 모습과 어느 정도 같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의 대답은 “남자들이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여자들이 금발에 날씬한 것으로 묘사된 것만 빼면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학계에선 ‘웨스트 윙’이 픽션의 한계는 있지만 상당히 사실에 근접해 있고 정치 참여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교육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호평했다. 실제로 ‘웨스트 윙’을 활용한 수업 방법이나 시민교육 등이 시도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생동감과 박진감 넘치며, 실제 미국 정치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리얼리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실전 정치 경험이 풍부한 경험자들이 직접 드라마 제작이나 대본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대통령이나 상·하원 의원의 참모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경험자들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관여하다 보니 실제 정치권이 돌아가는 내부 상황과 생리를 정확하게 묘사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미 카터의 브레인이 대본 써
‘웨스트 윙’은 정치 컨설턴트 출신인 패트릭 캐들이 초기부터 대본을 함께 썼다. 그는 ‘지미 카터의 브레인’으로 통한다. 미 정가에서 여론조사가 선거 전략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1세대 컨설턴트'로 통하는 캐들은 80년대 중반 정치 컨설팅에서 은퇴하고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에어 포스 원’ ‘사선에서’ ‘아웃 브레이크’ 등 정치를 소재로 다룬 다수의 영화에서 제작 자문을 맡거나 극중 정치인의 연설이나 정치 참모 간의 대사를 집필하는 대본작업을 해 왔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멀린 피츠워터와 클린턴 정부 첫 대변인이었던 디디 마이어스도 컨설턴트로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서와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함으로써 양쪽의 균형을 잡는 역할과 함께 극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로널드 레이건의 스피치라이터였던 페기 누난이나 공화당의 여론조사 전문가 프랭크 런츠, 클린턴의 경제 참모였던 진 스펄링 등도 에런 소킨의 자문 요청에 수시로 응하면서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소킨이 떠난 후 바통을 이어받은 로런스 오도넬은 고 패트릭 모이니핸 상원의원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55년생인 오도넬은 하버드대학을 나왔고 여기서 교수였던 모이니핸 의원을 만났다. 93~95년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상원 재정위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러다 깅그리치 혁명으로 불리는 공화당의 중간선거 압승으로 민주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자 워싱턴을 떠나 할리우드에 몸을 실었다. 그는 드라마에 카메오 출연을 하고 NBC에서 방영하던 드라마들의 정치 관련 내용을 자문하는 일을 했다.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 수퍼스타 정치 컨설턴트로 통하는 마이크 머피나 제임스 카빌 등도 드라마나 영화의 대본을 쓰거나 때론 카메오 출연을 하면서 할리우드와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장에서 정치 자문을 하거나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면서도 정치 영화·정치 드라마의 제작에도 관여하는 '경계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경계인의 양산이 정치 드라마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단순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치거나, 어설프게 변죽만 울리다마는 겉핥기 식을 뛰어넘어,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듯한 생동감과 실제감을 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실감 극대화 시즌7 ...2008 대선 판박이
‘웨스트 윙’이 보여준 사실감의 절정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즌7이다. 특히 대선 후보 TV 토론편은 압권으로 꼽힌다. 제작자인 존 웰스는 실제 대선 토론과 같은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대선 후보 토론과 유사해야 한다고 판단, 드라마의 토론 부분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대선 후보 토론 패널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언론인 포레스트 소여가 극중 진행자로 실명 등장했다. 방송 내내 화면엔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방송 전엔 월스트리트 저널·뉴욕 타임스 등 주요 신문에 예고 광고도 내보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극중 TV 토론이 성공을 거둔 건 불법 이민·감세·안보 등 실제 토론과 같이 모든 주제가 다뤄진, 어느 대선 토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오도넬은 방송 뒤 “지금껏 맡았던 것 중 비닉(공화당)과 산토스(민주당)의 TV 토론 부분이 가장 어려운 대본이었다”고 토로했다.

2006년 막을 내린 시즌7의 대선 캠페인 과정은 실제로 2년 뒤 벌어진 2008년의 대선을 예고했다는 점도 화제를 낳았다. 극중 매트 산토스(지미 스미스 扮)는 무명의 히스패닉 출신 하원의원으로 워싱턴의 변화를 기치로 민주당 후보가 된다. 아널드 비닉(앨런 앨다 扮)은 공화당 내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온 고령의 후보다. 각각 무명의 흑인인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의 등장과 맞아떨어진다. 또 극중 산토스가 경쟁자였던 비닉에게 국무장관을 제의한 것도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기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실제 정치권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지켜보던 제작진의 판단이 어떤 정치 전문가 못지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당시 극본을 맡았던 공동 제작자 엘리아티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스타가 된 오바마에 착안, 그의 측근인 데이비드 액설로드(현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 대해 세밀한 취재를 했다는 후문이다. 제작자 오도넬 역시 공화당에서 매케인 같은 정치인이 후보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를 모델로 삼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이처럼 사실을 더 사실처럼 보여주면서 여기에 낭만과 재미를 더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미드 '웨스트 윙'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한다.



김윤재는 법무법인 원에서 미국변호사 겸 정치 컨설턴트(공공전략컨설팅 소장)로 일한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미국 정치를 강의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영화학)에서 공부했다. 뉴욕대 와그너행정대학원 석사·뉴욕시립대 로스쿨을 나왔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