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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산업현장 경험으로 교육 혁명 일으킨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마이스터고 교장 선생님이 된 50대 기업인들





50대 기업인 세 명이 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설립한 ‘마이스터 고교(산업수요 맞춤형 고교)’의 초대 교장을 맡은 인물들이다.이승희(58) 전 르노삼성자동차 부사장은 부산자동차고, 강희태(57) 전 한국전력 배전운영처장은 서울 수도전기공고, 장헌정(55) 풍산(옛 풍산금속) 기술고문은 울산정보통신고의 교장으로 다음 달 1일 취임한다. 이들은 교육계 경력도, 교사 자격증도 없다. 하지만 30년 넘는 산업현장 경험으로 학교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각오다. 이들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최고의 기능인력을 길러내는 것으로 사회에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추진

마이스터(Meister)는 독일어로 ‘기능 명장’을 뜻한다. 마이스터 고교는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고교에서 충실한 직업훈련 교육을 받으면 좋은 일자리를 구해 사회에서 명장으로 우대받는 독일 시스템을 지향한다. 이 대통령은 “마이스터고를 졸업해 4년간 직장에서 일하면 대학 4년을 다닌 것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해 왔다.현재까지 기존의 전문계(실업계) 고교 중 21곳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인가를 받아 마이스터고로 전환했다. 이들 학교는 앞으로 2년간 ‘한 지붕, 두 학교’의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다음 달 입학하는 신입생부터는 마이스터고 과정, 2·3학년은 기존 교과 과정으로 수업을 받기 때문이다.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학비(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학교에 따라선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집중교육을 받는다. 교육부는 앞으로 마이스터고를 5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마이스터고의 교장은 만 58세 이하로 기술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근무 경력이 있으면 지원할 수 있다. 교장으로 선임되면 4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지난해 12월 학교별 교장 공개모집에 응모한 이승희·강희태·장헌정씨는 올 초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승희 교장은 “퇴직을 앞두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사회에 공헌할 곳이 어딜까 찾아봤다. 마침 마이스터고 교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는 의뢰가 회사로 들어왔기에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사원 시절부터 부사장까지 32년간 인사 업무를 했다. 인사가 결국 사람을 잘 키우고 활용하는 것인 만큼 학교에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는 데도 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퇴직 후를 고민하다 우연한 기회에 마이스터고를 알게 된 것은 강희태·장헌정 교장도 마찬가지다. 강 교장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보직을 떠나 대기연수로 쉬던 중 마이스터고의 교장 공모 소식을 접했다. 한 달 정도 공부해 경영계획서를 만들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나름의 교육철학과 비전 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들 세 명은 “회사 경영이나 학교 경영이나 경영이란 점에선 같다”고 말했다. 장헌정 교장은 “공장 관리를 총괄하는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며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들었듯이 학교 현장에도 ‘신바람 나는 감성 경영’을 접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변화와 개혁이 공통의 화두



강희태 교장은 이미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공식 임기는 다음 달 1일 시작하지만 이달 초부터 학교로 출근하며 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그는 최근 교사들을 모아놓고 기업형 팀제를 학교에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공서열에 의해 주로 50대가 부장교사를 맡는 관행도 깼다. 13명의 팀장 중에는 30대 후반의 홍영기(39) 교사도 있다. 팀장을 보조할 각 팀의 총무 교사로는 젊고 의욕적인 30대 초·중반의 교사들을 배치했다.

 강 교장은 “옛날에 부장 교사를 했던 분이 팀장을 맡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 교체했다”며 “연령을 보면 50대보다 40대가 조직의 중추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여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50명 정도의 학생이 우리 학교에 공부하러 온다. 이들을 위해 영어로 하는 교과과정과 실습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며 “UAE협력개발팀을 별도로 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연공서열 파괴에 대해선 “경력이 오래됐거나 나이에 상관없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 교사를 팀장에 임명했다”며 “공고 특유의 남성적 분위기 때문인지 과거에는 부장교사에 여성이 전혀 없었다. 잘못된 전통이라고 보고 여교사 한 분을 팀장으로 발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조직 개편은 하드웨어의 변화이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는 소프트웨어의 변화”라며 “팀장 내정자들을 불러 모아 조직 개편의 취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업무계획서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업무계획의 구체적 내용은 나하고 상의해 결정하되 옛날식을 답습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변화와 개혁은 이승희·장헌정 교장에게도 공통된 화두다. 이 교장은 “국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변화다. 교육계가 아닌 기업체 출신을 영입한 이유가 현재와 다른 것을 추구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급한 개혁은 일부 교사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그는 “교장이 교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인사 권한이 취약한 게 현실이다. 기업에서 하는 냉정한 신상필벌이 학교에선 통하지 않는다”며 “교사들과 대화를 통해 얼마나 잘 풀어가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면 꺾일 수밖에 없다. 우선 현장을 배우고 4년의 장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장 교장은 ‘교사들과의 인간적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교사 개개인의 자질이 떨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요즘은 공장에서도 일방적 지시로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교사들이 자긍심과 소속감을 느끼고 ‘내가 정말 변화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원이 된 다음에도 공장에서 직접 걸레를 들고 기계를 닦았다. 리더가 궂은 일에 솔선수범하면 진심이 통할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퇴직 후 사회 봉사로 선택”

이승희 교장은 1977년 삼성그룹에 들어가 종합건설과 그룹 비서실, 전자 반도체부문 등에서 인사담당으로 일했다. 95년 삼성이 그룹의 핵심 인재를 골라 ‘21세기 기획단’이란 이름으로 자동차 사업 진출 태스크포스(TF)를 꾸리자 인사팀장으로 참여했다. 이후 외환위기의 여파로 삼성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2000년 프랑스 르노에 인수될 때 삼성으로 복귀할 기회가 있었으나 스스로 포기했다. 그는 “인수 후 회사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최대한 많은 인력을 설득해 남게 할 임무가 있었다. 나를 믿고 남은 2000명의 동료를 책임지기 위해 잔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강희태·장헌정 교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30년 이상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임원까지 올랐다. 강 교장은 78년 한국전력에 입사한 뒤 일선 사업소장을 거쳐 배전운영처장(민간기업의 상무급)을 지냈다. 지난해 ‘전력기술진흥대회’에선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해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기술의 선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장 교장은 79년 풍산에 들어가 울산 온산공장 기획실장, 인천 부평공장장, 기술이사(상무급)를 역임했다. 그는 이달 말 기술고문으로 퇴직할 예정이다.



장 교장은 “풍산은 세계 동전 시장에서 1위 업체다. 미국은 물론 유럽·일본에서도 풍산이 만든 동전을 쓴다”며 “자동차·반도체의 필수 소재인 동합금과 방위산업 물자인 포탄도 만든다”고 소개했다.이승희·장헌정 교장의 집안은 교육계와 인연이 깊다. 이 교장은 “부친(이의철)이 서울대, 모친(김갑순)이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고, 누님(이원희)도 홍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장 교장도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고, 아내와 동생이 현직 교사다. 가족 셋이 동시에 울산교육청 소속으로 일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강희태 교장은 “교육계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학 양성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병역특례 무산, 취업 걸림돌 우려

마이스터고는 졸업 후 100% 취업을 목표로 한다. 세 명의 기업인 출신 교장은 “풍부한 업계 인맥을 바탕으로 열심히 발로 뛰며 최대한 많은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유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어정쩡한 대졸자보다 확실한 기술을 갖춘 고졸자가 취업하기엔 더 유리하다”고도 말했다.



장헌정 교장은 “현재 산업현장에선 기능 인력의 고령화가 큰 문제다. 이들이 한꺼번에 퇴직하는 2~3년 뒤엔 기업마다 신규 인력 수요가 엄청날 것”이라며 “젊고 우수한 기능 인력에겐 취업의 문이 활짝 열릴 날이 곧 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일수록 블루칼라(공장노동자)와 화이트칼라(사무노동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최고의 전문기술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잘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대우도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희태 교장도 “사실 전력 분야에선 미래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상당수 대학의 전기공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폐합으로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라며 “반면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 수주 등으로 해외 파견을 위한 전력 기술자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전력산업은 국제 경쟁력이 있다”며 “지금까지 자동차·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전력 분야가 가장 유망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장 취임 후 기업체의 수요에 맞게 학과와 교과 과정을 개편할 계획이다. 장 교장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울산은 공업도시라 기회가 많다. 내가 근무한 풍산에서도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이승희 교장은 “국산 자동차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 활발하게 수출되는데, 거기서 애프터서비스(AS)를 담당할 정비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고졸은 외국어를 못한다는 선입견을 깨야 한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도 열심히 가르쳐 ‘글로벌 인재’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강희태 교장은 “현재 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병역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선 마이스터고 졸업생을 뽑은 뒤 몇 년 동안 애써 일을 가르쳐 놓으면 군대를 보내야 한다. 이런 사정이 고졸 채용을 기피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마이스터고 졸업자가 혁신형 중소기업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면 병역근무 대체가 가능한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병역특례 부분은 없었던 일이 됐다. 대신 졸업 후 길게는 4년까지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 강 교장은 “기존의 산업체 병역특례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 석·박사 출신의 고급 인력 위주다. 정부가 진정으로 마이스터고를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병역특례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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