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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택 정문 앞에 세운 조벽 나와 남을 정확하게 가르는 장치

결코 작지 않은 벽이 문 앞에 서 있다. 조벽이다. 안에서 이뤄지는 은밀함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중국의 건축적 특징이다. 중국인들은 조벽 안에서 ‘나’와 ‘남’을 정확하게 가른다.
중국 통일 왕조로서 장강(長江) 이남으로 내려가 수도를 세운 첫 케이스가 동진(東晋·317~420)이다. 북방의 유목 세력에 크게 밀려 남쪽으로 쫓겨 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동진은 그 후에도 북방의 침략에 시달린다. 사안(謝安)이라는 인물은 그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다. 그가 권력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활개를 친 인물은 환온이라는 야심가였다. 환온에게는 극초라는 모략가가 있었다. 그는 환온이 황제 자리에 오르도록 부추겼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회색(灰色) <6>

사안이 친구와 함께 환온의 집을 방문했다. 환온은 자신의 음모를 사안에게 들킬까 염려했다. 자신의 책사였던 극초에게 “사안이 오니까 장막 뒤에 숨어 있으시게”라고 당부했다.응접실에서 환온과 사안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분다. 바람에 휘말려 올라간 장막 뒤로 숨어 있던 극초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안은 환온과 극초의 사이를 잘 알고 있었던 상황이다. 아주 머쓱한 장면이 연출됐다. 사안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환온과 극초에게 한마디 건넨다. “선생은 (환온의) ‘장막 속 손님(入幕之賓)’입니다 그려….”

『진서(晋書)』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막료(幕僚)라는 말이 나왔다. 일본 전국시대 이후 줄곧 유행했던 막부(幕府)라는 단어도 여기서 파생했다. 막료와 막부. 동양사회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왕조 시대에서 늘 있었지만, 정통의 정치 형태로 보기에는 조금 변형된 내용이다.

중국에서의 막료와 막부는 권세를 지닌 대신과 고관, 장수와 지방에서 할거하는 지역 수장들에게는 반드시 따라다녔던 존재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내밀한 개인적인 조직이자 그 구성원을 일컫는다.

환온과 극초의 예에서 보듯 막료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아주 가까워서 황제를 쫓아낸 뒤 자리에 오를 ‘모반(謀叛)’의 행위까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관청에서 다루는 공식적인 행사는 별개다. 보스의 사생활을 관리해 신임을 받는 사람이 막료다. 공적인 직위로 정해지는 부하-상관의 관계를 훨씬 뛰어넘는 은밀하면서도 개인적인 관계다. 개인적인 회계업무와 병사(兵事) 관계,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이 막료들이 처리했다.

요즘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3000년 이상의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새로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했다고 하지만 공산당의 고위층이 자신의 권력을 운용하는 여러 면모는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고위급 공산당 지도자에게는 주변 그룹이 따라다닌다. 특히 지방 실력자의 경우 그 공식적인 권력은 공산당 중앙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행사하지만 개인적이면서 주변적인 권력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룹들에 의해 행사되는 경우가 많다. 상당한 고위층 관리의 경우도 그가 있는 ‘판공실(辦公室)’에서 잡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식적인 라인도 살아 있지만 비선(秘線) 조직의 움직임과 기능도 만만치 않다.

막료와 막부가 발달하고 비선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늘 관찰되는 중국적인 전통의 하나다. 공개적이면서 투명한 절차보다는 이면적이면서 내밀한 기능이 곳곳에 살아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막부와 막료라는 개념에서 등장하는 것은 ‘막(幕)’이다. 장막이요, 커튼이자 가림막이다. 장막과 커튼, 가림막 안에 들어가 있어야 그 주인에게는 아무것이나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막료’가 되는 것이고, 그 장소는 ‘막부’가 되는 것이다. 거꾸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안주인과는 아무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바깥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막료와 막부의 전통을 가장 오래 간직한 곳, 그런 은밀함의 대표적 장치는 ‘조벽(照壁)’이다. 중국 전통 가옥을 들어가다 보면 반드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문 바로 뒤에 놓인 크고 둔중해 보이는 벽이다. 밖에서 안을 쉬이 들여다볼 수 없게끔 만든 일종의 가림막이다.

전통주택인 사합원(四合院)의 정문을 들어서면 당신의 걸음 앞에는 늘 이 벽이 우뚝 서 있다. 당신의 시야를 가리고, 당신이 호기심에서 미리 엿보고자 하는 그 집의 내면적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서 막힌다. 조벽은 병풍장(屛風牆)이라고도 불렀다. 병풍처럼 안쪽의 보여주기 싫어하는 곳을 가리는 장벽이라는 뜻이다. 때로는 ‘영벽(影壁)’이라고도 불린다.

풍수적으로는 집 바깥의 상서롭지 못한 기운이 집 안의 내실(內室)에까지 직접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안에서 형성되는, 맑고 좋은 기운이 외부의 기운에 침범당하지 않도록 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런 조벽은 ‘소장(蕭牆)’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공자(孔子)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나오는 이 ‘소장’이라는 단어 역시 대문 안쪽에 설치된 가림벽이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대문 안쪽으로 만들어 두던 조벽과 동의어다. 그런 점으로 미뤄보면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내부를 가리는 장치로서 이 조벽을 설치한 역사는 꽤 오래인 것이다.

뭔가 가릴 게 많고, 드러내는 게 싫어서 만들었던 게 이런 조벽이요, 소장이요, 병풍장이다. 나아가 막부와 막료의 전통 또한 남과 나를 엄격하게 갈라 친함과 소원(疏遠)함을 나누는 데서 나왔다. 그런 점에서 보면 중국인들은 내외(內外)를 잘 가린다. 조금이라도 나와 먼 사람이라면 흉중(胸中)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속내를 가리고 숨기는 행위에 익숙하다. 말이나 언어, 사고의 영역에서도 남에게 곁을 선뜻 내주지 않으려는 그런 습성이 보인다. 나의 빛을 가리고, 그를 위한 어둠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그저 나온 게 아니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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