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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프로, 호텔 청소반장 이토

한 시절 나는 일본의 호텔 요코하마라는 곳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호텔 요코하마는 러브호텔이다. 그건 한길을 등지고 수줍게 자리 잡은 건물 모양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용하는 고객이 하나같이 연인이고 무엇보다 객실 TV 채널이 항상 특정 채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TV를 켜면 언제 어디서나 사랑부터 나누는 남녀의 숨가쁜 율동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호텔 요코하마의 청소부는 TV 채널이 제대로 세팅돼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룸 청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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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는 두 사람이 짝을 지어 했는데 신입인 나는 이토와 짝이었다. 아주머니와 할머니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 그이는 예쁘게 생겼는데 말수도 적고 표정 변화도 적어서 무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토는 말없이 샤워실 청소의 시범을 보였다. 간단한 일이다. 나는 5분도 안 되어 일을 마치고 그에게 갔다. 침대 시트를 갈고 있던 이토는 ‘벌써?’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청소를 다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뭐 그 정도쯤이야, 하는 기분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이토는 샤워기를 틀어 욕실 벽에 물을 뿌렸다. 벽에 남아있는 기름기 때문에 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청소반장은 신입 청소부에게 다시 한번 시범을 보였다. 그것은 느리고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었지만 무겁고 힘이 들어간 작업 행위였다. 이토는 벽에 물을 뿌렸다. 물은 한 방울도 맺히지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부끄러워 귀까지 다 빨개졌다.

오후 3시30분, 쉬는 시간이면 이토는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거나 차를 끓여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동료들과 나눠 먹었다. 살갑게 말을 붙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눈이 마주치면 어쩐지 따뜻한 격려를 느끼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청소반장 이토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가 대단했다. 언제나 성실했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래서 호텔 요코하마는 늘 청결했다. 언젠가 한 층의 작업을 마치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 이토의 얼굴에 번지던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정말 반갑고 귀한 것을 발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아, 먼지다!” 그렇게 감탄하며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벽의 먼지를 닦았다.

제법 일에 익숙해진 나는 샤워실 청소를 마치고 이토의 룸 청소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때 옆방에서 다급한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토는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여자지만 그래도 여자다. 나는 민망해 더 청소할 것도 없는 샤워실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얼핏 본 이토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막상 쉬는 시간이 되자 그는 동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얼굴이 빨개져 얼마나 쩔쩔맸는지 샤워실로 도망가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웠는지 흉내까지 내며 놀리는 것이다.

몇 년 후 일본 출장 때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호텔 요코하마를 찾았다. 마침 오후 3시30분쯤이라서 이토와 동료들은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대기실로 들어서는 나를 청소반장 이토는 마치 잃어버렸던 자식이라도 찾은 것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몇 년 전 잠시 함께 일했던 외국인을 이토록 와락 반겨주니 나로서는 그저 감사하고 감격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 먼지다!” 이토는 내 코트에 묻은 먼지를 떼어내며 말했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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