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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중국, 문을 열다

닉슨과 마오쩌둥의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만남
1972년 2월 21일 닉슨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맞붙은 뒤 냉전 상태를 유지하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던 중국은 닉슨의 방문을 계기로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닉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레알 폴리틱스를 주장했다. 냉전체제하에서도 국익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떠나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을 실행할 것을 주장했다. 이것이 닉슨의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발을 빼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발을 빼면 ‘중국의 지원을 받는’ 북베트남과 베트콩에 의해 남베트남 정부가 곧바로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던 것이다.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갇혀 있던 미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북베트남 공산당 사이의 갈등, 북베트남 공산당과 베트콩 사이의 긴장관계를 알지 못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 또 다른 이유는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정책의 일환이었다. 중국과는 소련과 별도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국경분쟁으로 악화돼 있던 중·소 관계의 분열을 더욱 조장하려 한 것이다. 이는 이미 중국혁명이 성공한 1949년부터 미국이 추구하려 한 정책이다. 하지만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미·중 관계가 단절되면서 미국은 1970년대까지 냉전체제하에서 소련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닉슨은 한편으로 중국의 빗장을 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과 핵 감축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닉슨 행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바로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로 불명예 퇴진을 해야 했으며, 중국 역시 문화대혁명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빗장을 완전히 여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1979년에 가서야 이뤄졌다.



닉슨의 중국 방문은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동북아에서의 긴장완화는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명분을 줬고, 남북 간에 7·4 공동성명이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대만의 국민당 정부 대신 대륙의 공산당 정부를 중국의 대표로 인정하게 되면서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가 해체되고,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이 새로 조직된 한미연합사로 이관되었다.



닉슨의 중국 방문은 현재 한국에 더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닉슨은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의 한 사람이었다. 만약 닉슨보다 진보적인 정치인이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났다면, 미국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보수적인 한국 정부가 교착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더 쉽게 풀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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