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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점에 기대지 말고 자신을 믿어라

해마다 이맘때이면 성황을 이루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점집’이다. 점집뿐만 아니라 사주카페·길거리점집 등 곳곳마다 신년운세를 묻는 사람들로 붐빈다. 심지어 요새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에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오늘의 운세부터 토정비결·애정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미아리·청량리 주택가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종로·압구정 등 번화가에 고급스럽고 세련된 외관과 인테리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다소 놀랍고 신기하다.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점집은 오히려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 조사기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8명이 운세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점술인의 수는 50만 명에 이르고 역술시장 규모는 2조~3조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니 가히 ‘운명소비’(김철민 광주대 교수)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사람들이 점(占)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 명 중 두 명은 단순히 재미와 흥미로 점을 친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이상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가 깔려 있다.



인간은 미래지향적인 동물이다. 오늘을 살면서도 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한다. 결혼은 언제쯤 하게 될지, 5년 후에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지, 10년 후에 아이는 몇 명이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누구나 이런 궁금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20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 특히 안 좋은 일을 미리 알고 이에 대비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동기 때문이라면 얼핏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운명소비 행동이 염려되는 것은 많은 젊은이가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이다. 잡지나 인터넷에서 채 열 개도 안 되는 질문에 답을 하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우자 유형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물론 다이어트 방법이나 바캉스 휴가 장소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거리마다 타로카드점을 치려고 서너 시간씩 기다리는 긴 행렬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선택과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할지,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직을 할지 혹은 대학원에 진학할지, 현재의 직장을 계속 다닐지 말지 등 인생의 고비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후회 없는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 스스로 곰곰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책이나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면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점(占)이다. 재미와 흥미로 포장을 하더라도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점집을 찾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함으로 점집을 찾는 그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다만 운명소비가 결국은 개인의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고, 자아(self)의 발전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자신의 ‘운명’을 점집이나 운세 사이트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일수록 적절한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택 후의 실천 행동이다. 배우자를 선택한 후에는 성숙한 결혼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직업을 선택하고 나면 그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 이때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은 최선을 다해 애쓰지만 외부의 강요나 압력에 의해 주어진 일에는 노력을 덜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다. 인생의 갈림길에 선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과 방황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점집을 찾는 것이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을 너무 빨리 내팽개쳐 버리는 행동 같아 안타깝다.



자신감과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사주카페를 드나들고 인터넷 운세 사이트를 애용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을 그저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현상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젊은이들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만큼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 여지도 크다. 미지의 세계이니만큼 불안이 뒤따르지만 이러한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



때로는 두렵고 떨리지만 수많은 선택지를 하나하나 제 손으로 택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의 참 묘미다. 점에 기대려 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믿어라.



성영신 고려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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